사진이 있는 이야기/우표이야기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

튼씩이 2020. 6. 5. 08:19

 

 

 

 

 

많은 사람이 일제 강점기를 피해와 굴욕의 역사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 하 35년의 역사 속에도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고자 일제와 싸워 값진 승리를 거둔 기록이 존재합니다. 봉오동 전투는 독립운동사에서 ‘독립전쟁 제1회전’으로 불리는 최고의 전과 중 하나로 우정사업본부는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의 독립군은 규모를 키우고 조직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독립군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격하는 국내진공작전을 벌였습니다. 1920년 6월 4일 새벽에도 신민단 소속 독립군이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진입하여 일본군 초소를 격파하고 화룡현 월신강 삼둔자로 복귀하였습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는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하였지만, 부대를 발견하지 못하자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였습니다. 이에 독립군은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일본군을 선제공격한 ‘삼둔자 전투’는 봉오동 전투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둔자 전투의 패전 소식을 접한 일본군 제19사단 사령부는 ‘월강추격대’를 편성하여 독립군 추격에 나섰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던 독립군은 6월 7일에 두만강을 건넌 월강추격대를 길림성 왕청현 봉오골로 유인하여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독립군은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반면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자 4명, 중상자 2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의 구성은 상해판 독립신문(1920. 6. 22.)과 매일신보(1920. 6. 21.)의 기사 및 서양화가 임직순(1921~1996)의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입니다.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를 통해 민족 주체성을 지키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독립군을 기억하고 그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