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문명과 문화, 같은 듯 다른 쓰임새

튼씩이 2022. 4. 20. 07:59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시작은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시장 진출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뒤이어 영화 ‘기생충’, ‘미나리’가 아카데미상을 휩쓸더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한국 음식 문화 역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라면, 초코파이, 떡볶이 등을 맛있게 먹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이미 낯설지 않다. 다양한 한국 문화와 더불어 한국인의 의식주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기이다.

 

‘문화’란 어떤 사회 집단이 오랜 시간 동안 형성하여 서로 공유하는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가리킨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그렇다면 문화와 비슷한 어감을 갖고 있는 문명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문명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뜻풀이되어 있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

 

문화와 문명은 인간 집단이 누리는 삶의 양태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실제의 쓰임에서는 서로 차이를 보인다. ‘과학 문명, 기계 문명, 공업 문명’의 경우 문명을 문화로 바꾸기 어렵고, ‘전통문화, 놀이 문화, 음식 문화’의 경우 문화를 문명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흔히 문화를 정신적ㆍ지적인 발전으로, 문명을 물질적ㆍ기술적인 발전으로 구별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해 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문명도 정신적 요소 없이 불가능하고 어떤 문화도 물질적 요소 없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명이든 문화든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다만 문명은 삶 속에서 편리를 추구하는 특성이 더 강하고, 문화는 삶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하는 특성이 더 두드러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둘의 차이를 추상성과 구체성에서 찾는 것도 분별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문화가 구체적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개별적 현상, 곧 언어, 예술, 종교, 학문, 풍습, 제도, 의식주 등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문명은 그러한 개별적 현상들을 모두 아우르고 뭉뚱그려 추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동양과 서양은 문화가 다르다.”라고 할 때, 이는 동서양의 구체적 삶의 방식과 모습이 다름을 뜻한다. 풍습과 제도, 의식주가 서로 다를 때 우리는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이런 점 때문에 문화는 ‘농경 문화, 대중 문화, 민족 문화’와 같이 구체적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말과 함께 쓸 수 있다. 그 반면에 “개화기에 서양 문명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에서처럼 ‘서양 문명’은 서양의 지적, 물질적, 기술적 성과물 전체를 추상적으로 가리킬 뿐 개별 현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또한 문명은 거시적, 총체적 개념으로 쓰인다. ‘로마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하 문명’ 같은 용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기업 문화, 대학 문화, 도시 문화’에서 보듯 문화는 미시적, 부분적 개념으로 쓰인다. 문명은 묶는 범위가 크고 넓으며, 문화는 그 단위가 작고 촘촘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편 문명은 다른 문명과 서로 비교하여 우열을 논할 수 있으나, 문화는 그런 식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가령 서양의 과학 문명은 동양의 과학 문명보다 앞섰다거나 고대 문명은 현대 문명보다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서양 문화가 동양 문화보다 우월하다거나 고대 문화가 현대 문화보다 낙후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문화는 각자 고유한 것으로서 서로 다를 뿐 질적 격차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문화는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이제는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릴 때에 역사와 전통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해외 현지화를 위해 외국어로 노래하거나 연기하는 것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한국 문화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계인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문화는 더욱 높이 비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한국 문화 열풍과 더불어 한국어를 공부하며 한국말로 대화하는 외국인도 점차 늘어나리라 기대한다.

 

 

글: 강은혜

 

※ 참고 자료  안상순, 『우리말 어감 사전』, 도서출판 유유,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