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언어의 숨겨진 힘 - 독이 되는 거짓말, 약이 되는 거짓말

튼씩이 2022. 4. 29. 07:56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거짓말을 ‘악의적인 거짓말’, ‘이타적인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로 나누었다. 악의적인 거짓말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남을 해치기 위해 꾸며 내는 거짓말이다. 적에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군의 위치를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거짓 대답을 하는 것은 이타적인 거짓말이다. 마지막으로 선의의 거짓말은 이웃집 아기를 보고 썩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여 “아기가 참 예쁘네요.”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타인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그런데 어떤 거짓말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체의 다양한 반응을 동반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려고 노력해도, 마음은 거짓말을 들킬까 봐 두려움과 긴장에 휩싸이기 때문에 자율 신경계가 일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거짓말의 대표적인 증상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불규칙해지며 식은땀이 나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눈을 깜빡이는 빈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심장 박동이 높아지면서 혈압이 오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모세 혈관이 많은 코가 부풀어 오르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코를 만지게 된다. 또 심리적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입을 막고자 하여 손이 입 근처로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한다. 대답 속도도 진실을 말할 때보다 늦어진다. 일반적으로 사실을 대답하는 경우 평균 0.5초 후에 대답이 이루어지는 반면, 거짓으로 대답하는 경우에는 대답을 하기까지 1초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거짓말은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에 대하여 다룬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보면 한 사람이 하루 동안 하는 거짓말의 횟수는 조사 방법과 대상에 따라 적게는 1번에서 많게는 무려 200번에 달한다. 즉 우리 대부분은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거나 듣고 있는 셈이다.

 

사람을 살리는 거짓말

 

거짓말이 삶의 스트레스를 줄여 주므로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약간의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앨라배마 대학교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찰스 포드(Charles V. Ford)에 따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주변을 냉소적으로 관찰하고, 다른 사람보다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고 듣는 것을 해석하거나,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을 판단할 때에도 환상이나 허위를 적당히 섞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서 더욱 절망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거짓말은 인간관계를 호전시키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해 주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선의의 거짓말’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의사의 진단이다. 가짜 약을 받더라도 그 약효를 믿으면 실제로 병이 호전되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을 의학에서는 ‘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상태가 매우 심각한 환자에게 의사가 ‘열심히 치료를 받으면 건강이 회복될 수 있다’고 사실과 다르게 말하더라도 이때의 거짓말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거짓말이 될 수 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환자는 좀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병마를 이기려고 노력하게 되고, 의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환자를 위해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프로 야구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은 아주 중요하다. 감독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주전 선수를 마음속으로 낙점해 둔다. 하지만 동계 훈련 때 감독들은 한결같이 ‘경쟁을 통해 성적이 좋은 선수를 기용하겠다’고 말하고, 이 말을 입증하듯 시범 경기 때 신인 선수와 후보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킨다. 하지만 정규 시즌에서는 몇몇 신인을 제외하고는 이미 감독이 낙점한 선수들이 고스란히 경기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감독의 거짓말은 감독 본인과 선수 모두에게 득이 된다. 신인 선수는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얻었다고 믿고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주전의 행운을 움켜쥘 수 있다. 기존 선수 역시 신인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따라서 감독은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선수들로 정규 시즌에 출전할 조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거짓말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려 하는 ‘악의적인 거짓말’은 타인의 재산, 심하게는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 치료의 효과를 믿음으로써 실제로 좋은 결과를 얻는 플라시보 효과와는 반대로,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는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절망감이 병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악의적인 거짓말로 어떤 사람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단언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실제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를 의도적으로 속이거나 감추는 것도 악의적인 거짓말에 포함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도 악의적인 거짓말인데,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에는 단순히 거짓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기 행위가 된다.

 

가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거짓말을 오랫동안 하거나 횟수가 잦아져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해를 주는 경우, 정신 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병적인 거짓말에는 ‘충동적 거짓말’과 ‘습관적 거짓말’, ‘공상허언증’ 등이 있다.

 

충동적 거짓말은 충동을 조절하는 물질인 세로토닌이 뇌에서 적게 분비되는 경우에 일어난다. 도박이나 도벽, 쇼핑 중독 등 충동 조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충동을 외면하거나 감추기 위해 필요 이상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습관적 거짓말은 비난을 받지 않으려는 방어적 심리나 타인에게서 관심과 애정을 얻으려는 의도에서 주로 행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전에 했던 거짓말에 맞는 정보를 끊임없이 재구성하여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자신도 타인도 잘 믿지 못하게 된다. ‘공상허언증’은 자신이 상상한 것을 진실인 것처럼 믿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거짓으로 꾸민 세계에 살면서 그 세계를 진짜로 믿고, 현실을 오히려 가짜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삼촌지설(三寸之舌)’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세 치의 혀’라는 뜻인데, 세 치밖에 안 되는 짧은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잘못 놀리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거짓말이라도 자신과 상대를 이롭게 하는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상대를 위험에 빠뜨리는 거짓말도 있다. 무심코 하는 가벼운 거짓말이라도 그 거짓말이 사람을 살리는 선의와 이타심을 담은 것인지 반드시 돌아보고 경계해야 한다. 내가 내뱉은 말은 언제나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거짓은 언젠가 진실 앞에 무릎을 꿇기 마련이니 말이다.

 

 

※ 참고 자료


이남석, ≪무삭제 심리학≫, 예담, 2008.
김보일,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2≫, 휴머니스트, 2006.
이상주, 강은미, ≪설득 커뮤니케이션≫,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