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조선 왕실 뿌리 되찾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 귀환
튼씩이
2025. 2. 3. 21:29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사장 김정희, 이하 ‘국외재단’)과 함께 일본에 있던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의 정보를 입수해 문헌 조사, 전문가들의 평가와 직접 조사하는 실견을 거친 끝에 지난해 2월 라이엇게임즈(한국대표 조혁진) 후원을 받아 국내로 환수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실물을 오는 27일 아침 10시 국립고궁박물관(서울 종로구)에서 언론에 처음 공개하기로 했다.
*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 조선후기 제작 / 나무 / 세로 140cm×가로 312cm
* 선원전(璿源殿):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역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진전(眞殿)
* 편액(扁額): 종이, 비단, 널빤지 등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
국가유산청이 국외재단과 함께 소장자 측에 조선 왕실의 문화유산인 <경복궁 선원전 편액>이 반드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당위성을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며 협상한 끝에 국내로 무사히 들여올 수 있었다.
‘선원(璿源)’은 ‘옥의 근원’이란 뜻으로 중국의 역사서 <구당서(舊唐書)>에서 왕실을 옥으로 비유한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왕실의 유구한 뿌리’를 의미한다. 선원전은 조선시대 궁궐 안에서 역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조선은 충과 효를 통치체제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역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하고 임금이 친히 분향, 참배 등의 의례를 행하는 선원전은 궁궐 안에서도 위계가 높은 전각이었다.
* 《구당서(舊唐書)》: 중국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
*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
* 봉안(奉安):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나 화상(그림으로 그린 초상)을 받들어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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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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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 뒷면
조선 왕실의 선원전은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있었다. 임금이 이어(移御)할 때는 역대 임금의 어진도 함께 옮겨야 했기 때문에 여러 궁에 선원전을 두게 된 것이다.
* 이어(移御): 임금이 거처(居處)하는 곳을 옮김
조선 왕실의 첫 선원전은 1444년 창건된 경복궁 선원전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이후 100여 년 동안 궁궐 안에 선원전을 건립하지 못하다가 1695년에 이르러 창덕궁에 선원전을 마련하고 어진을 봉안한 것이 지금의 옛 선원전이다. 고종 때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선원전의 기능도 경복궁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따르면 1865년부터 경복궁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868년 경복궁에 선원전이 재건되었다.
*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 경복궁 공사(1865~1868년)를 기록한 문서
1897년부터 고종이 경운궁에 머무르자, 경운궁에도 선원전이 세워졌다. 고종이 경복궁에 머물 땐 경복궁으로, 창덕궁에 머물 땐 창덕궁으로 어진도 따라 옮겨졌다. 이에 대한제국기에는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 3곳의 선원전이 모두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경운궁 선원전은 《진전중건도감의궤(眞殿重建都監儀軌)》의 기록에 따르면 1900년 화재로 불에 탄 이후 1901년에 재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경운궁 선원전은 1921년 창덕궁으로 옮겨졌고, 이것이 현재의 창덕궁 새 선원전이다.
한편, 경복궁 선원전은 일제강점기에 헐어버려 박문사(博文寺)를 짓는 데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재는 창덕궁에만 두 곳의 선원전이 남아있다.
* 《진전중건도감의궤(眞殿重建都監儀軌)》: 경운궁 선원전 공사(1900~1901년)를 기록한 의궤
* 박문사(博文寺): 조선총독부가 1932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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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두리와 봉 왼쪽과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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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 모양 봉 조각(위, 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