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왕실문화 인문강좌(국립고궁박물관)
세자의 교육 (7) - 체육 교육과 예술 교육
튼씩이
2022. 7. 7. 07:08
7. 체육 교육과 예술 교육
왕실 교육에는 체육과 예술을 가르치는 과정이 있었다. 먼저 체육 교육을 보면 어린 시절에는 건강을 위한 체조를 가르쳤고, 점차 성장하면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혀야 했다. 활쏘기와 말 타기는 국왕이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기능이었다. 왕실에서는 대사례(大射禮)나 연사례(燕射禮)라 하여 국왕과 신하들이 어울려 활쏘기 시합을 벌이는 예제가 있었고, 국왕이 장거리 이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말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국왕의 활쏘기 실력과 관련하여 정조에게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정조는 천부적이라 할 정도로 활을 잘 쏘았는데, 어떨 때에는 연속해서 만점이 나올 정도의 실력이었다. 1795년에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열었는데,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신하들과 어울려 활쏘기 시합을 벌였다. 시합 결과 국왕의 성적이 최고였는데, 활쏘기를 전문적으로 연마하는 장수들보다도 월등하게 좋았다. 국왕의 실력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자 정조는 ʻ활쏘기 솜씨는 우리 집안의 내림이라ʼ고 했다. 놀라운 활쏘기 솜씨를 보였던 태조나 태종, 세조와 같은 국왕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국왕은 예술 분야에서도 일정한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모든 국왕은 시인이었다.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국왕과 신하들이 어울려 시를 짓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국왕 뿐 아니라 사대부도 시를 짓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혼자 있을 때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나 늘 시를 지으면서 생활했다. 조선 사대부의 문집에서 시집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왕은 서예나 그림, 음악에도 일정한 수련을 쌓아야 했다. 국왕의 글씨를 어필(御筆)이라 하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어필을 보면 선조, 효종, 숙종, 영조의 글씨는 예술작품이라 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또한 조선의 국왕이 그린 그림도 상당수가 남아 있으며, 음악에는 특히 세종과 정조가 조예가 깊었는데 정조는 음악이론서인 『악통(樂通)』을 저술할 정도였다.
왕실 교육에서 체육과 예술을 중시한 것은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학문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것을 교육의 최종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8. 언교(言敎) 보다는 신교(身敎)
왕실 교육은 지식보다 덕성을 중시했고 학문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자면 기초 교육, 교양 교육을 튼튼하게 한 다음에 전문 교육으로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또한 교육에서는 말로 하는 언교(言敎)보다 스승이 몸으로 실천해 보이는 신교(身敎)를 강조했다. 백 마디의 말보다 몸으로 보여주면서 그대로 따라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