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왕실문화 인문강좌(국립고궁박물관)
궁중장식화 - 어디에 놓였을까, 침전
튼씩이
2022. 8. 8. 08:00
3) 침전
침전(寢殿)은 궐내에서 왕이 휴식, 수면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향유하는 내전(內殿) 영역으로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원리에 따라 정전과 편전의 후방에 배치되었다. 외부로 개방된 대청마루에서는 소규모의 연회가 이루어졌고, 대청 좌우에 위치하는 온돌방에는 칸막이 역할을 하는 장지[障子]를 설치하여 다중의 실(室)을 만들고, 그 정중앙(正中央)의 방에서 왕과 왕비가 수면을 취했다.
침전은 내전 영역이기 때문에 기물의 배설과 관련한 공식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궁궐 침전의 수리를 맡은 한 선비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실록에서 찾을 수 없었던 화려한 실내 장식을 엿볼 수 있다. 1802년 순조(純祖)는 김조순(金祖淳)의 딸 순원왕후(純元王后)를 왕비로 맞이하기 위해 창덕궁 대조전을 침전으로 수리하였다. 「大造殿修理時記事(대조전수리시기사)」는 당시 선공감 봉사로 공사에 참여한 이이순(李頤淳)이 그 내부를 상세히 묘사한 기록이다.18)
이 기록에 따르면 한 방에 여러 종류의 병풍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대조전 정당을 예로 들면 북벽에 금병풍(金箋屛)을 고정시키고, 그 앞에 <요지연도>를 겹쳐 두었으며, 서남쪽에는 앞뒤로 산수화를 삽입한 삽병을 두어 문을 반쯤 가로막기도 하였다. 병풍을 벽에 기대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겹쳐 두고, 공간을 나누고 가리는 용도로도 사용한 것이다. 어떤 방에는 서쪽에 <매화도> 병풍을, 북쪽에 <죽엽도> 병풍을 두고, 동쪽에 <매죽도>를 붙여서 사방의 매화와 대나무가 서로 조응하는 효과를 누리기도 하였다.
침전은 공식적인 행사와 업무를 보는 정전, 편전과 달리 왕실 가족의 사적인 공간이었다. 따라서 기복적이고 장식적인 주제의 그림들이 다른 장소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이 곳은 국왕의 휴식 공간이기도 하였기에 침전 영역 역시 감계적 문구를 적은 병풍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병풍이 명종의 침전에 펼쳐져 있었다는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19)
18) 李頤淳, 「大造殿修理時記事」, 『後溪集』; 정병설, 『권력과 인간』(문학동네, 2012), pp. 40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