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한글문화연대
“티비에서도 그러던데요?” ‘노필터’ 방송 언어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
튼씩이
2023. 8. 5. 09:28
한 학생이 교사의 ‘이지(理智)적이다’라는 칭찬을 ‘easy적이다’로 알아듣고 자신을 ‘쉽게 보는’ 것 같아 속상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가? 2년 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던 이 일화는 청소년의 문해력에 많은 누리꾼의 걱정을 자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도 ‘사흘/나흘’, ‘심심한 사과’, ‘금일/익일’ 등과 관련된 일명 ‘엠지세대’의 문해력이 화제가 되면서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언급되었다.
그중에서 방송 프로그램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은 아이들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필요한 영어 자막 사용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프로그램당 영어 자막 노출 횟수가 평균 68.2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에 비해 20건 넘게 증가한 수치이다. ‘런닝맨’, ‘더글로리’, ‘이태원 클라쓰’, ‘일타스캔들’, ‘나는 솔로’ 등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의 제목도 외국어나 외래어로 이루어진 사례가 많았다.

어느 프로그램이든 연령 제한은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특성상 부모의 엄격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이상 연령 제한이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다. 어렸을 적부터 불필요한 외래어와 외국어를 남발하는 방송을 보고 자란 아이가 ‘이지적이다’라는 말을 ‘easy적이다’라고 알아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성장기 아이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늘어났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2021년 서울 경기 지역 어린이집 교사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영유아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질문에 ‘코로나19로 인해 언어 노출 및 발달 기회가 감소했다’는 의견이 74.9퍼센트로 2위를 차지했다. 특히 학부모들은 코로나19로 아이들의 미디어 노출 시간이 증가한 것이 언어 발달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 동생을 둔 한 20대 여성은 “동생이 코로나로 인해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으니 텔레비전을 비롯한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이 급속도로 증가했다”며 “실제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헬스에 미친 듯이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 ‘헬창’을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