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제4996호) 조선시대 금주령, 벌 받는 건 백성뿐

튼씩이 2024. 9. 12. 17:29

한성부에서 이뢰기를, "전 군수 한용호(韓用鎬)의 집에서 몰래 술을 빚어 팔고 있으니, 청컨대 잡아다 심문하여 벌을 주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이번에 벼슬아치가 어려움 없이 고의로 죄를 지었으니, 나라에 기강이 있다고 어찌 말할 수 있으며, 백성들이 또 어떻게 법을 두려워하겠느냐? 이렇듯 무엄한 무리는 결코 예사로 처리해서는 안 되니, 한성부가 1차 엄히 벌하고 먼 곳에 유배하라." 하였다.

 

이는 《순조실록》 순조 32년(1832년) 윤9월 12일 기록으로 조선시대 큰 가뭄이 들거나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나라에서 술 마시는 것을 금하는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곤 했습니다. 금주령을 내리는 것은 이 기간 이 기간 몸을 가다듬고 절제함으로써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로하며 식량과 비용을 절약할 목적이었지요. 1392년 조선 개국 직후 흉작으로 인하여 금주령을 내린 것을 비롯하여 여러 대에 걸쳐 빈번하게 시행되었습니다.

 

▲ 김후신(金厚臣) <대쾌도(大快圖)>, 자본담채, 크기 33.7 x 28.2 cm, 간송미술재단 소장

 

특히, 태종 때는 해마다 내려질 정도였고, 영조 34년에는 큰 흉작으로 궁중의 제사에도 술 대신 차를 쓰는 등 엄격한 금주령이 발표되었지요. 하지만, 살벌한 금주령이 내려진 영조 때에도 금주령 앞에 희생당하는 건 양반이 아닌 일반 백성이었습니다.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 하는 백성은 술을 빚어 팔았다고 잡혀가고, 몰래 술 마셨다고 잡혀가지만, 금주령이 내려진 대낮에도 양반들은 김후신의 <대쾌도> 그림처럼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고 대로를 활보했다고 합니다. 그에 영조 임금은 ‘금주령을 없애고 술주정하는 것만 금하도록 하라.’ 하라는 명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