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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공기관 누리집에 멘토링, 팝업존..변화가 필요한 때

공공기관 누리집에 우리말 사용도 현황이 어떤지 궁금증을 안고 접속해 보면 실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가 쓰이고 있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누리집에는 멘토링, 팝업존 같은 용어가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다. 정보를 얻고자 접속한 국민들이 온전하게 누리집을 이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공공기관의 역할 공공기관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국가의 감독 아래 일반 사회의 여러 사람과 관계있는 일들을 처리하는 기관’이다. 여러 사람과 관계있는 일들을 처리하는 기관, 즉 공익을 목적에 둔다. 그렇기에 국민의 이해를 위해서는 보다 쉬운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누리집을 들어가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공기관 누리집에서 보이는 어려운 용어들    위 사진은 공공기관 한국장학재단의 누리집..

(얼레빗 제5029호) 조선말의 무진장한 노다지 〈임꺽정전〉

96년 전인 1928년 오늘(11월 21일)은 홍명희 장편 소설 〈임꺽정전(林巨正傳)〉이 〈조선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임꺽정전〉은 1939년 3월까지 연재되다가, 일제의 강제 폐간 조처로 다시 《조광(朝光)》으로 옮겨 연재했으나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지요. 이 작품의 이름은 처음에 <임꺽정전(林巨正傳)>이었으나 1937년 연재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면서 <임꺽정>으로 바뀌었는데, 조선시대 가장 큰 화적패였던 임꺽정 부대의 활동상을 그린 역사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연산군 때부터 명종 때에 이르는 16세기 중반 조선 중기의 역사적 상황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고, 특히 봉건적 질곡을 뚫고 일어선 평민 이하 일반 백성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 근대 역사소설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이육사의 딸입니다

그의 삶에는 유난히 숫자 4가 많이 등장한다. 1904년 4월 4일생이고 세상을 떠난 해는 1944년이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가 젊을 때 갇힌 감옥의 죄수 번호도 264번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의 본명이 이원록이지만 이육사가 그를 대신하는 필명(筆名)이 되었다. 25살 때인 1929년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뒤 요양을 위해 집안 어른인 이영우의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머물면서 이영우에게 죽인다는 뜻의 육(戮)자를 골라서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곧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라는 의미였다. 이에 이영우는 "혁명적인 의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니, '戮'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

(얼레빗 제5028호) 한양의 문물제도와 풍속을 노래한 ‘한양가’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창작가사 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산거사가 누구인지는 잘 모릅니다.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704행인데 조선 왕도인 한양의 문물제도와 풍속 그리고 왕실에서 능(陵)에 나들이하는 광경 등을 노래한 것입니다. 같은 이름이지만, 내용이 다른 이본이 많은데, 조선 도읍지 한양을 노래한 이 작품을 ‘향토한양가(鄕土漢陽歌)’라 하며, ‘한양태평가(漢陽太平歌)’ 또는 ‘한양풍물가(漢陽風物歌)’라고도 하는 이본들도 있습니다. ▲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는 한양의 문물을 노래한 것답게 백성의 삶이 집약되어 있는 시장 풍경을 신명나게 읊고 있습니다. “칠패의 생어전에 각색 생선 다 있구나. 민어, 석어, 석수어며, 도미, 준치, 고도어며, 낙지, 소라,..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578돌 한글날을 지내며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에 관해 막연히 알던 부분을 자세히 살펴본다.《훈민정음 해례본》이란?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의 창제 과정과 원리를 설명한 책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의 옛 이름인 "훈민정음"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글의 창제 과정과 사용법, 창제 배경을 기록한 이 책은 문자와 책을 구분하기 위한 한글의 해설서 역할을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로는 예의(例義)다. 세종대왕이 직접 작성한 부분으로, 한글을 만든 이유와 기본적인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여기에는 한글을 창제한 배경과 목적, 그리고 모든 글자가 어떻게 음을 이루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해례(解例)다. 세종대왕을 보좌했던 집현전 학자 8명..

주시경 서거 110주년과 그 의미

지난 7월 27일은 주시경 선생이 세상을 뜬 지 1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힌샘 주시경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친 국어학자이다. 우리 말과 글을 체계화해 ‘오늘의 한글’을 있게 한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맞춤법의 뼈대는 모두 그의 연구로부터 체계화되었다.  ‘한글’이라는 이름 역시 주시경이 조직한 ‘국어연구학회’의 우리말 명칭인 ‘배달말글몯음’이 ‘한글모’로 바뀐 데에서 비롯되었다. 주시경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인 ‘말모이’는 1910년대 조선광문회에서 전국 각지의 말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려던 작업이지만 주시경의 이른 서거로 중단되고 만다. 관련 내용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또한 최초의 순우리말 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을 발..

「인천 구 조흥상회」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인천 구 조흥상회」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인천 구 조흥상회」는 1955년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에 지어진 지상 2층의 상업시설로, 광복 이후부터 현대기로 넘어가는 1950년대 건축의 시대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건물의 정면(파사드)은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의 기능을 모두 갖춘 상가주택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파사드(facade): 건물의 정면으로 주입구가 있는 면 ▲ 「인천 구 조흥상회」 ▲ 「인천 구 조흥상회」 또한, 근대기 인천의 역사를 온전히 간직한 배다리 지역을 대표하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삶과 역사가 깃든 장소로서 보존해 활용할 값어치를 지녔다.* 배다리: 인천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