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ᄂᆞᆫ거슨 샹하귀쳔이 다 보게 홈이라 ᄯᅩ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ᄯᅦ여 쓴즉 아모라도 이 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잇ᄂᆞᆫ 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ᄒᆞᆷ이라" 이는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창간한 우리나라 첫 민간 신문 《독립신문》 창간호 논설입니다. 초기 《독립신문》은 가로 22cm, 세로 33cm 크기였습니다.
《독립신문》은 모두 4면으로, 한문이 아닌 한글과 영문으로 발행했는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만 3면을, 외국인들에게 조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영문(The Independent)으로 1면을 구성했지요. 또한 한글 보급과 이해를 돕기 위해 처음으로 국문 띄어쓰기를 도입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민중에게 자주독립 정신과 근대적 민주주의 의식을 북돋웠습니다.

▲ 한글로 발행한 《독립신문》 창간호(1896년 4월 7일 자)
1898년 7월 이전에는 주 3회 격일로, 그 이후에는 일간으로 발행되다가 1899년 12월 4일 자로 폐간되었지요. 《독립신문》 한 부를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읽기도 했으며 양구군수가 장에 나와 사람들에게 독립신문을 읽어준 사례가 보도(1898.11.9. 제1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창간일인 4월 7일이 현재 한국의 '신문의 날'로 지정되어 기리고 있지만, “조선 사람들이, 일본이 조선을 위한다는 것을 자세히 모르는 것이다.”(44호 논설) 같은 친일 성향의 논설 탓에 ‘신문의 날’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지요. 이 독립신문 말고 3·1만세운동 직후인 1919년 8월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창간된 또 다른 《독립신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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