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4

남한산성의 치욕, 못난 역사를 기록하다

못난 역사도 역사다. 우리 역사에는 영광에 가득 찬, 빛나는 업적을 세운, 후세에 자랑스럽게 전할 만한 역사만 있는 건 아니다. 못난 모습도 많았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 적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서로 분열하며 탁상공론만 거듭하던 모습, 그리고 마침내 적에게 굴욕스러운 항복을 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장면을 합친 역사가 병자호란이다. 1636년 병자년, 12월 겨울부터 약 두 달 동안 이어진 전쟁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60만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본래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적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다가오자 급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책, 《남한산성의 눈물》은 이때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공조참의 나만갑(羅萬甲)이 남한산성..

(얼레빗 4584호) 살생부가 되어버린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 은자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시고 / 즈믄해를 이대로 전하여 봄 직하지 않은가 / 삼년 뒤 정월 초하룻날 밤 치지정에서 다시 펼쳐 보고서 시를 짓는다.” 이는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다시 꺼내 보고 감탄하여 지은 시입니다. 그렇게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 소장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신선들과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노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깬 뒤 너무나 생생한 장면을 잊을 수 없어 화가 안견에게 부탁해서 그린 그림이 바로 세로 38.7㎝, 가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