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자 신분의 특수성과 의례
세자는 차기 왕위계승자를 미리 책봉하여 왕권 계승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ʻ사왕嗣王ʼ으로 예정된 인물이다. 따라서 몇가지 특수한 신분적 특징을 갖게 된다.(이효석, 2005 참조)
(1) 세자로 책봉되어 즉위하거나, 사망하거나, 폐위될 때까지 존재하는 임시적 존재로서, 항상 존재하는 신분이 아니라 특정 기간동안 존재한다.
(2) 세자는 궁궐 내에서 독립적 영역으로 인식되는 동궁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한다.
(3) 세자는 신하의 입장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왕을 대신하는 입장이기도 하여 군신관계 로 보면 양면성을 띤다.
(4) 세자는 대개 궁궐 내의 다른 인물들에 비해 나이가 어리다.
먼저, 세자의 재위기간이 연속적이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점은 동궁이라는 공간이 항상 동일한 기능으로 활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때로는 국상 시의 빈전이나 혼전으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왕실 구성원의 임시 처소, 혹은 임금 등이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별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경복궁의 경우 창덕궁의 희정당처럼 야대 등에 이용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동궁이 이러한 용도로 사용된 예가 있다.
세자의 공간이 ʻ동궁ʼ이라는 독립적 영역으로 인식되는 점은 창덕궁-창경궁의 동궐 내에서 동궁을 시민당 일대 혹은 중희당 일대 등으로 변동해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낸다. 즉, 동궁은 정전-편전-침전 및 부속전각들로 구성되는 궁궐의 공간 질서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내부의 전각 구성도 때에 따라서는 축소되거나 확장될 수 있었다.
한편 세자의 신분적 특징은 세자에 관한 의례를 설정할 때 영향을 주었다. 세자와 관련된 국가의례는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성종대 『국조오례의』 속의 세자 관련 의식은 정월 초하루와 동지의 조하의주를 백관과 왕세자를 구분하지 않고 연속적 과정으로 묶은 점, 중궁에 대한 왕세자의 조하를 추가한 점, 관례, 혼례, 서연회강, 입학 등의 의주를 추가한 점 등이 세종조의 의주 목록과 다른 점이다. 『國朝續五禮儀』에는 조참, 입궐에 대한 의주가 추가되었다. 『國朝續五禮儀補』에는 청정 이후의 하의, 상참의가 추가되었고,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를 위한 왕세손 관련 의주가 함께 포함되었다.
이 중 가장 빈번하게 지속되며 중요시된 의절은 책례와 관례이다. 책례는 궁궐의 정전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의식에서 세자는 책봉을 받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임금의 역할이 더욱 컸다. 관례 역시 궁궐의 정전을 이용하였고 주인, 빈, 찬 등의 인물이 의식을 주도하였다. 한편 입학례는 신분적으로 상위에 있는 왕세자가 의식 속의 관계 상 사제관계의 제자 입장이 된다는 위계상의 충돌이 주목되는 의식이다. 또한 세자가 임금을 대신하여 청정하는 세자조참 등에 있어서는 임금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아닌 세자라는 두 측면이 충돌하여 공간 사용이 복잡한 논의를 촉발하였다. 더군다나, 시민당 등 일부 동궁 전각은 남향이 아니라 동향을 하고 있는 등 방위 관계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세자 조참을 예로 보면, 세종 25년의 세자 조참에서 계조당의 정면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자의 자리를 놓았는데, 절대방위로는 서향에 해당하였다. 31년의 조참에서는 근정문 외정을 이용하였는데, 세자가 마당의 서쪽에 자리하고 앉아 동향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숙종 43년에는 동향하는 시민당 내에서 남향으로 자리를 잡았고, 영조 25년에는 동일 전각 내에서 동향으로 자리한 바 있다. 영조51년에는 경희궁 남향하는 경현당에서 서향으로 앉았고, 순조 27년에는 남향하는 중희당 내에서 역시 서향으로 앉았다. 이러한 상황을 일별해 보면 세자의 좌향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정되기는 하였지만 건물이 남향인 경우에는 서향으로 자리하고, 남향이 아닌 경우에는 건물의 정면을 피해 남향으로 앉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세자의 좌향을 남향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자는 특별한 신분이면서도 어린 나이인 경우가 많다. 세자의 의례 중 가장 중요한 의례는 책례와 관례인데, 관례를 대상으로 조금 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아래 표는 관례를 행한 예를 보여준다.
관례는 命賓贊, 冠, 會賓客, 朝謁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그 중 명빈찬과 관의 단계가 각각 어떤 곳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보면, 명빈찬은 근정전, 인정전 등의 궁궐 정전을 이용하는 것이 상례였고, 관의는 시민당, 경현당, 중희당 등 동궁의 전각을 이용하였다. 관례의 사례를 통해 각 시기별 동궁으로 사용된 전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국조오례의』의 의례 항목을 전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의례의 장소가 특정된 것은 근정전, 근정문, 사정전, 중궁정전, 동궁정당, 혼전과 빈전 등으로 국한되어 있는데, 동궁 관련 의식을 동궁 정당으로 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의식에서 세자는 서향을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사부, 이사 등이 세자에게 관을 부여하는 의식의 속성과도 관계되는 것이다.
세자가 너무 어린 나이에 책례를 해야 한다면 정전 대신 편전을 택해 공간의 규모를 줄이고 참여 관원의 수를 축소하는 등 의례의 규모를 줄여 심리적 부담을 줄이는 방법 등이 선택되기도 하였다.
4. 요약
이상과 같이, 조선시대 궁궐의 동궁은 왕세자의 공간이면서 때로 혼전이나 임금의 별전 등 여타의 기능이 부여되기도 하였던 특수한 공간이다. 동궁은 별개의 공간으로 인식되었지만 경복궁을 제외한 여타의 궁궐들에서 동궁 영역은 뚜렷한 영역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왕세자가 갖고 있는 신분적 특수성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었다. 동궁을 이해하는 것은 동궁 자체로만이 아니라 궁궐 전체의 기능 공간의 배치와 함께 살펴져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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