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왕세자의 조참
왕세자의 대리청정 절목을 보면 왕세자가 처음 대리청정을 할 때 조참을 한다는 규정이 있다. ʻ조참ʼ이란 국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회의 하나인데, 매월 아일(衙日, 1일, 6일, 11일, 16일, 21일, 26일)에 거행하는 조회이다. 이와 구분하여 매일 거행하는 조회는 상참이라 한다.
조참은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행해진 조회이다. 국왕이 정기적으로 거행했던 조참을 왕세자가 거행한 것은, 왕세자가 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효명세자의 조참의식은 1827년(순조 27) 2월 18일에 중희당에서 거행되었다. 먼저 순조는 인정전에서 문무백관으로부터 대리청정을 축하하는 인사를 받고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령하는 반교문을 내렸다. 이는 대제학으로 있던 김이교가 작성했다.
하루 종일 번잡한 정무에 응하다 보니 오랫동안 조섭하고 보양하는 데에 적합하지 못했다. 왕세자는 백성들이 바라는 바이니 이에 대리청정을 명했다. 이 조치는 임시로 편하게 살자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대 선조께서 돌보아 주시는 것이다. 나는 부족한 덕으로 외람되게도 어렵고 큰 기업(基業)을 계승했다. 어린 나이에 종통(宗統)을 이었는데 일찍이 하늘이 돌보지 않으셨고, 20여 년 정치를 했지만 아, 세월만 덧없이 흘러갔다. 오늘날까지 여름 장마와 큰 추위에 대한 근심이 있으니, 비록 넓은 집과 좋은 옷감으로 살고 있지만 봄날에 얼음을 밟는 것과 같았다. 이에 많은 시간을 조섭하는데 쓰다가 보니 국가의 사무가 정체됨을 어이하랴? (중략)
이제 2월 18일에 세자에게 청정을 명하니, 진실로 병사와 형벌의 중요한 일이 아니면 번거롭게 아뢰지 말고, 내외의 서무는 모두 재결하게 하라. (중략) 이 달 18일 새벽 이전의 잡범은 죽을 죄 이하는 모두 용서하여 놓아준다. 아, 산하에 공고함을 더하니 신과 사람이 모두 기뻐할 것이다.
순조에게 축하 인사를 올린 문무백관들은 왕세자가 있는 중희당으로 이동하여 조참을 거행했다. 조참의식은 1717년 왕세자 경종이 대리청정을 할 때 정리된 의식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 의식은 『국조속오례의』에 수록되어 있다.
1) 하루 전날 액정서에서 왕세자의 좌석을 중희당 동벽에서 서향으로 설치한다.
2) 당일에 액정서에서 왕세자 배위를 좌석 앞에, 향안 2개를 앞 기둥 좌우에 설치한다. 장악원은 고취를 진설한다. 장의(掌儀)는 종실백숙(宗室伯叔)과 친왕자군(親王子君)의 배위를 중희당 안의 북쪽에, 사부(師傅) 이사(貳師) 대신들의 배위를 중희당 안의 남쪽에 설치한다. 종친과 문무 1품 이하의 배위는 뜰의 남북에 설치한다.
3) 5각 전에 의장, 군사, 장마(杖馬)를 행사장에 배치한다. 종친과 문무백관은 상복을 입고 직방에 모인다.
4) 3각 전에 종친과 문무백관은 행사장 문 밖의 자리로 간다. 배위관(陪衛官)이 무기와 복식을 갖추고 합(閤)에 가서 효명세자를 맞이하는데, 익위 2명은 칼을 차고, 사어 2인은 활과 화살을 갖춘다.
5) 왕세자가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여를 타고 나와 좌석에 앉는다. 궁관(시강원과 익위사의 관리), 집사관, 종친, 문무 3품 이하의 관리가 들어와 각자의 자리에 선다.
6) 종실백숙, 친왕자군이 북쪽 계단을 경유하여 중희당에 오르고, 사부, 이사, 대신들이 남쪽 계단을 경유하여 중희당에 오른다. 왕세자가 배위로 가서 서고, 당에 오른 관리들이 재배하면 왕세자가 답배한다. 왕세자는 이들이 뜰 안으로 들어올 때 좌석에서 일어났다가 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다시 자리에 앉는다.
7) 종친, 문무 2품 이상의 관리가 배위에서 재배하고, 왕세자는 답배하지 않는다.
8) 필선이 왕세자에게 가서 예가 끝났음을 아뢴다. 왕세자가 좌석에서 내려와 여를 타고 안으로 돌아간다.
왕세자의 조참의식을 국왕의 조참의식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가 있었다. 국왕은 남쪽을 향하는 건물의 북쪽에 앉아 남면을 했지만, 왕세자는 서쪽을 향하는 건물의 동쪽에 앉아 서면을 했다. 국왕만 남면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왕의 조참에서는 건물 안에 국왕의 자리만 있었지만, 왕세자의 조참에서는 건물 안에 종실백숙, 친왕자군, 사부, 이사, 1품 이상 대신들의 자리가 있었다. 이들이 왕세자에게 절을 할 때에는 왕세자도 답배를 했다. 왕세자가 종실의 어른과 스승을 우대하는 조치였다. 또한 관리들은 국왕에게는 네 번 절을 했지만 왕세자에게는 두 번만 절을 했다. 조참은 왕세자가 국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는 존귀한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조참의식에는 국왕과 왕세자 사이에 위상의 차이가 있음이 반영되고, 집안 어른과 스승을 우대해야 한다는 의식이 반영되었다.
효명세자가 중희당에서 정사를 보기 시작하자 대신들이 충언을 아뢰었다. 영중추부사 김재찬은 정성과 부지런함을 강조하면서, 학문을 부지런히 하여 몸과 마음이 날로 새로워지고, 이를 바탕으로 정사를 하면 백가지 법도가 바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중추부사 한용귀는 공경함을 강조했고, 판중추부사 김사목은 사물의 바른 것을 구하고 사람들의 말에서는 중도(中道)를 취할 것을 강조했다. 효명세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같이 부덕(否德)한 사람이 이와 같이 대리(代理)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사양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하고 억지로 따르게 되었다. 여러 대신들의 충성과 사랑에서 나온 말들이 이처럼 간곡한데, 감히 명심하지 않겠는가?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이런 중책을 이어받아 두려운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조참할 때 연석(筵席)에서 여러 대신들이 힘쓰기를 권하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다시 경(우의정 심상규)의 차자를 보니 충성과 사랑의 정성이 간곡하다. 소자(小子)가 어찌 감히 명심하고 깊이 따라 힘쓰라는 훌륭한 뜻에 보답하지 않겠는가? 경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보필하여 국사를 함께 다스려 나가도록 하라.
대신들의 충언을 명심하고 국왕을 대신하는 정치를 제대로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왕세자는 책봉의식, 입학의식, 관례의식, 조참의식을 거치면서 국왕에 즉위하는 지점으로 점차 다가갔다. 왕세자는 특히 대리청정의 조참의식이 끝나면 이내 국왕을 대행하여 공식적인 집무를 시작했다. 대리청정을 하던 왕세자는 국왕의 유고가 발생하면, 바로 국왕으로 즉위하여 국정을 처리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왕세자와 관련된 의식들은 왕세자가 국왕 자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통과의례였으며, 왕세자의 대리청정과 조참은 마지막 단계의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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