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장수가 만일 호조의 황첩(黃帖, 일정한 세를 물고 발급받은 여행증명서)도 없이 사사로이 매매하면 해당 부사(府使)는 금고(禁錮, 관리가 되는 자격을 박탈하는 벌)의 율로 시행하라."하였다. 호조 판서 김상성(金尙星)이 일본(日本)의 예단(禮單)에 쓰일 삼을 채울 수 없다고 올렸는데, 대체로 인삼장수가 삼을 가지고 왜관(倭館)에 가서 매매하면 이익도 많고 황첩이 없으면 세금도 내지 않기 때문에 몰래 잠입한 자가 많았으므로, 동래 부사가 이들을 금칙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 명이 있게 된 것이다.“ 영조실록 76권 영조 28년(1752년) 4월 2일 기록입니다.

▲ 인삼 (사진, 개삼터인삼농장 제공)
또 “중국 배가 와서 시끄럽게 하고, 홍삼을 몰래 사가는 것을 단속하되, 아울러 이러한 내용을 개성 유수(開城留守)와 평안도ㆍ함경도 두 도의 관찰사에게 경계하라고 명하였다.”라는 《고종실록》 1권, 1년(1864) 2월 3일 기록도 있습니다. 또 1828년 북경에 다녀온 박사호의 기행문인 《심전고(心田稿)》에는 "연경에 가지고 가는 것이 금지된 물건은 금, 인삼, 담비가죽인데 홍삼은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했다. 연경 사람들이 그 값의 10배를 주고 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몰래 거래하므로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인삼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는데 서양에도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인삼은 요즘 시세로 따져 금값의 1/3 정도로 거래될 만큼 조선의 효자 상품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밀수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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