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립중앙박물관 2층 연결복도에서 본 경천사10층석탑 전체 모습

▲ 박물관 1층 구석에서 본 모습, 주변에는 탑에 대한 설명을 듣는 관람자들이 많다

▲ 2층 복도에서 본 기단과 3층

▲ 3층 기단, 외국에서 온 손님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 1~3층 아(亞)자 형 평면의 탑신과 건축물의 상세장식과 지붕을 덮은 옥개석 모습

▲ 3층 탑의 아(亞)자형 복잡한 지붕에서 4층의 ㅁ자로 변하는 부분의 상세모습

▲ 상세모습, 이렇게 복잡한 구조의 집이라면 과연 방수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다.

▲ 기와지붕 아래 복잡한 공포의 상세모습, 조선시대 가장 복잡한 다포양식의 공포를 그대로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 4~10층 탑신모습, 10층 위에는 상륜부가 있었는데, 이동 하는 과정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경복궁내에 있을 때에도 있었는데...아쉽다.

▲ 경복궁에 세워졌던 경천사10층석탑, 상륜부가 남아있는 모습(국가유산청 자료사진)
오늘 보는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가운데 중정에 서있는 경천사 10층석탑이다. 경천사는 현재는 갈 수 없는 북한지역 황해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이탑은 고려 후기 원나라의 석조장인들이 원나라의 건축양식으로 고려땅에 세운 석탑이다.
이 석탑은 한국내 다른 탑들과는 모양도 다르고 석재의 재료도 다르다. 한국내 석탑들은 대부분 화강암 석재를 구하여 자르고 다듬어서 세웠지만, 경천사석탑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대리석을 정밀한 목조건축양식으로 세부장식까지 재현한 석조탑이다. 이탑의 높이는 13.5m로 현대식 건축물로도 4층 높이에 해당하는 대단한 규모로, 재료인 대리석을 중국에서 가지고 오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이를 세밀한 목조건축양식으로 다듬는 일도, 다듬은 석재들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일도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이 탑은 본래 북한지역의 경천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09년 일본 군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가 무슨 수를 썼는지 구입하여 해체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가 심각한 나라 안팎의 저항에 결국 반환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깨지고 또 다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쌓아 올리면서 깨어지는 등 본래의 모습에서 많이 손상된 채 일제강점기에 돌아와 한때 경복궁 근정전 앞 회랑에 쌓지도 못하고 널부러져 방치되었다가 1959~ 60년 경복궁 뜰 앞에 다시 조립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어울리지도 않게 절의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을 생각하며 예불드리고 탑돌이하던 탑이 궁궐의 앞마당에 장식품처럼 서있게 되었었다.
이후 1995년 김영삼정부의 일본인들의 반성하지 않는 만행에 분개하여, 경복궁 앞에 서있던 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는 등 역사 바로세우기의 하나로 경복궁 복원계획이 수립되고, 아울러 제대로 된 박물관 건물이 없던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보여주기 위하여 새롭게 국립중앙박물관을 건립하면서 경천사10층석탑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전시하기로 계획하며, 경복궁에서 다시 해체하였다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정에 옮겨져 세웠다.. 그런데 이탑은 여러차례 옮겨지는 가운데 상처를 많이 입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형태이나, 다만 본래 있던 10층 탑의 지붕위에 세워져 있던 상륜부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이탑에는 기단부부터 10층 꼭대기까지 건축물의 각부 곧 기단, 기둥, 벽체, 공포, 지붕의 기와까지 매우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목조건축의 기법과 형태를 세밀하게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다.
탑의 1층에는 이탑을 조성한 기록이 새겨져 있어 그 건립연대와 배경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1348년 당대 고위 관료였던 강융과 고용보 등이 시주하였고, 이를 세움으로 원나라 황제와 황실의 장수과 만복을 기원한다고 적혀있다. 탑을 건립하는데 큰 돈을 낸 고용보는 고려출신 원나라 황실의 환관이고, 강융은 당시 원나라에 큰 권세를 누리던 기황후의 측근이었다. 따라서 탑의 성격으로 보면 이탑은 부원배 세력의 인물들이 원나라 황실의 번영을 기원함으로써 지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탑은 한국내 있는 탑으로는 매우 희귀하게 기단이 3층이며, 기단부부터 3층까지는 아(亞)자형의 평면에 지붕은 4면에 합각기와지붕으로 매우 섬세하고 화려한 다양한 장식을 하였으며, 기둥위에서 지붕을 떠받드는 공포대는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다포식 공포에 처마 또한 서까래 위에 부연이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으며, 지붕의 기와 또한 다양한 장식기와와 복잡한 지붕의 등과 골이 실제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이다.
4층 이상은 아(亞)자 형에서 ㅁ자형의 단순한 형태가 되어서, 그 지붕 또한 단순화 되었다. 지금은 언제나 가볼 수 있는 박물관의 중심공간에 있지만, 800년 전 세계를 주름잡던 몽골의 사위국의 지위에서 고려왕보다 더 위세를 떨치던 부원세력의 막대한 자금으로 세워진 석탑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불행중 다행한 일이 아닌가 한다. 경천사10층석탑을 보면서 800여년 전 옛 장인들의 돌다루는 솜씨와 건축기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대적 장비없이 저 높은 탑을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 상상해 봄으로 당시 기술을 짐작해 본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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