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에서 계하기를, "고려 《고금상정례(古今詳定禮)》에 이르되, ‘무릇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서울의 여러 문(門)에 사흘 동안 날마다 영제(禜祭)를 올리되, 한 번 영제를 지내도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이에 큰 산, 큰 강과 바다에 3일 동안 기도(祈禱)하며, 그래도 그치지 않으면, 사직(社稷)과 종묘(宗廟)에 기도하며, 지방 행정구역에서는 성문(城門)에 영제를 지내고, 경내(境內)의 산천에 기도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장마가 오랫동안 계속하여 곡식을 손상했으니, 도성의 성문과 지방 가운데 장맛비가 너무 많은 곳에 영제를 지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조선시대 장마가 계속되면 총각ㆍ처녀들이 혼기를 놓쳐 음양의 기운이 어긋난 탓이라며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인공지능 ‘제미나이’ 생성)
이는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18년) 6월 14일 기록으로 장맛비가 오래 내리자, 영제(禜祭) 곧 기청제(祈晴祭)를 지내도록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곳곳에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장마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해마다 찾아오는 거대한 자연재해였으며,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에는 비가 오랫동안 내리는 현상을 '장마'의 옛말인 ‘오란비’ 또는 한자어로 ‘임우(霖雨)’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에는 3일 이상 연속으로 비가 내리면 장마로 생각했습니다.
순조 임금 때인 1832년 6월에는 하루에만 348mm의 물폭탄이 쏟아져 도성 안 가옥 3,100여 채가 무너지고 64명이 숨지는 참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조선시대는 장마가 길어지면 임금은 하늘이 노한 것으로 여겨 감선(減膳) 곧 수라상의 가짓수를 줄이고 고기반찬을 끊으며 스스로 경계했습니다. 또 장마가 몇 달간 지속되고 백성들이 가난해져 혼기를 놓치면, 음양의 기운이 어긋나 장마가 계속된다고 믿었습니다. 조선시대는 관청에서 혼수품을 지원하며 처녀ㆍ총각의 혼례를 적극 독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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