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덕후의 미덕으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해설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역사책에서 한두 줄로 설명되는 백성의 삶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짐작하게 해주며, 한국사 교과서 주요 등장인물인 조선 선비들의 숨겨진 면을 저격한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잘난 아버지 뒷바라지에 멘붕을 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야망이 없다’ ‘미래 계획이 없다’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퇴계 이황, 기러기부부로 살지만 바람 같은 건 모른다며 은근슬쩍 아내를 도발하는 남편에게 ‘솔직히 나이 60에 홀아비 노릇 하면 당신 건강에 득이 되는 거지 나한텐 1도 이로울 게 없네요’라고 당차게 응수하는 아내, 경로사상 따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냈는지 권신 심환지에게 ‘이런 생각 없는 늙은이를 봤나’라고 핵폭탄을 날린 정조, 부부 사기단으로 활약한 집안 노비에게 당한 후 울며불며 편지를 보낸 선비의 아내…. 팩트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 자랑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면, 조선 사람들이 쓴 편지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개인 문집이나 편지글 모음집, 두 번째는 가문 내에서 대대손손 전해진 편지들을 모은 것,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무덤에 함께 묻은 것이 느닷없이 발굴된 것이다. 뒤로 갈수록 일상을 그려볼 수 있는 선명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편집자의 필터링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받은 편지를 평생 소중히 간직하다가 죽음 너머에까지 함께한 소장자의 편지는 그 사람의 생애 안팎을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의 장점은 이 같은 팩트 체크에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상상을 뛰어 넘는 독특한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편지를 쓰려면 글을 알아야 하고, 글을 배우는 건 양반들의 몫이고, 그러니 편지 내용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겠지’ 하는 짐작을 가볍게 배신한다. 최고 권력자인 왕족, 내로라하는 가문의 주역들이 쓴 편지라고 해서 일반 백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더 나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상에 우아하고 심오한 게 어디 있나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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