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림병 8

(얼레빗 4702호) “리셋의 시간?”, 우리말 짓밟는 언론

한겨레신문 2월 15일 치 신문 1면에는 대문짝만하게 대통령 후보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제목을 “펜데믹 이후 한국사회 ‘리셋의 시간’”이라고 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목을 좀 길더라도 ”지구촌 돌림병 대유행 이후 한국사회 ‘재시동의 시간”이라고 하면 안 될까요? 책이건 신문이건 글을 쓰는 바탕은 쉽게 쓰기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래어 또는 외국어를 써서는 안 되겠지요.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굳이 ’펜데믹‘, ’리셋‘이라는 말을 써야 유식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잘난 체와 다름없습니다. ▲ “펜데믹 이후 한국사회 ‘리셋의 시간’”이라고 제목을 단 기사 심지어 에 들어오는 보도자료들을 보면 기자나 편집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말을 쓰는 곳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나..

(얼레빗 4668호) 조선시대에도 ‘전염병 예방 규칙’ 있었다.

“뜻밖에 유행의 괴질(怪疾)이 천리의 바다 밖에까지 넘어가 마을에서 마을로 전염되어 마치 불이 들판을 태우듯이 한 바람에 3읍(三邑)의 사망자가 거의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아! 이게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 예로부터 너희들의 고장은 남극성이 비쳐 사람들이 질병이 적다고 하는데, 이번 재앙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진실로 내가 덕이 없어 상서로운 기운을 이끌어 먼 곳까지 널리 감싸주지 못한 소치이므로, 두렵고 놀라워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이는 《순조실록》 25권, 순조 22년(1822년) 10월 19일 기록으로 멀리 제주도에 돌림병이 돌아 세 읍에서 죽은 사람이 수천 명이라는 소식을 듣고 임금이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연결되어 뭍의 돌림병이 순식간에 제주도에도 퍼지..

(얼레빗 4662호) 괴질예방법, 염산에 물 백배 타서 마셔라?

“그 무서운 괴질이 경성에서도 발생되야 일면 경찰당국은 교통차단을 하고 위생당국에서는 괴질예방주의서를 인쇄하야 돌리고, 일반 인심이 흉흉한데 이에 대하야 의사 김용채 씨는 말하되 “요사히 괴질을 예방하기 위하야 약을 먹어 예방하는 데는 (가운데 줄임) 염산이라는 물약을 양약국에 가서 사서 백배 되는 물에 타서 식후에 하루 삼시로 먹으면 관계치 않을 것이요...” ▲ 동아일보 1920년 8월 7일 기사에는 경성이 괴질의 아가리에 물렸다는 그림을 올렸다. 위는 동아일보 1920년 8월 7일 기사의 일부입니다. 당시도 돌림병이 돌아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그 가운데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염산에 물 백배를 타서 마시라는 의사가 있었으니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도 예방주사를 맞도..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끼니 버릇 나쁜

오늘은 4285해(1952년) 펴낸 ‘과학공부 5-2’의 53쪽부터 54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53쪽 첫째 줄에 52쪽부터 이어져서 ‘여러 가지로 섞어서 먹도록 하자,’가 나옵니다. 이 말은 요즘에는 ‘골고루’라는 말을 많이 쓰다 보니까 쓰는 사람이 없지만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혼식(混食)’이라고 쓰지 않은 것이 더 반갑고 좋았습니다. 둘째 줄에 ‘하루 세 끼’와 ‘끼니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요즘도 ‘1일 1식’, ‘1일 2식’, ‘1일 3식’과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루 한 끼’, ‘하루 두 끼’, ‘하루 세 끼’라고 하면 참 쉽고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매 끼니마다’라는 말을 쓰는 ..

(얼레빗 4614호) 옛 사람들 돌림병 돌자 귀신에 제사 지내

“서울에 돌림병이 크게 유행하여 사람이 많이 죽는지라, 임금이 한성부에 명하여 집계하여 보니 죽은 자가 4백 57인이 되고, 또 병조에 명하여 호군(護軍) 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성문을 지키면서 사람의 주검이 문을 나가는 것을 헤아려서 아뢰라고 하였다. 좌찬성 황보인(皇甫仁)이 고려 숙종(肅宗) 때의 옛일에 따라 돌림병 귀신에게 제사지내어 예방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위는 《세종실록》 세종 29년(1447) 5월 1일 치 기록으로 서울에 돌림병이 돌아 심각했음을 얘기하면서 돌림병 때문에 귀신에게 제사지내기까지 했다는 기록입니다. 우리말로 돌림병(한자말로는 전염병)이라 부르는 병들은 《조선왕조실록》에만도 259건이 검색될 정도로 고통을 받았지요. 특히 지금은 별것 아닌 홍역 같은 돌림병에도 쩔쩔 매..

(얼레빗 4490호) 홍역에서 정약용을 살린 명의 이헌길

요즘은 우리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처럼 돌림병이 돌면 속수무책이었는데 영조 때만 해도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홍역으로 50~60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조 임금 때인 1775년(영조 51) 이헌길은 한양에 갔다가 삼태기에 싣고 나가는 홍역으로 죽은 주검이 잠깐에 수백 명이나 되는 것을 보고, 상주의 신분임에도 백성을 구해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이헌길은 홍역에 관한 한 최고의 의술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의 비방을 얻은 사람은 죽을 지경이다가도 살아나고, 열이 오르다가도 내렸기에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가 홍역 환자를 치료하는 집 앞에는 사람들이 골목까지 줄을 설 정도였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병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다..

(얼레빗 4369호)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한 감로도(甘露圖)

"백성들이 불행하게도 거듭 흉년을 만난 데다가 돌림병까지 겹쳐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고 몹시 가난하여 잇따라 죽고 있으니, 이것만도 매우 참혹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또 제 때에 주검을 묻지 못하여 주검과 뼈가 도로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족히 화창한 기운을 침해하여 재앙을 초래할 만하다. 고요히 그 허물을 생각하면 내 실로 부끄럽고 마음 아프다." 《순조실록》 34년 1월 24일의 기록으로 흉년에 돌림병까지 겹쳐 많은 백성이 죽어가고 그 주검이 길거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처참한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에는 돌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되면 조정에서는 한성과 지방에 여제단(癘祭壇)을 설치해 돌림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달래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을 피막에 수용, 격리하고, 돌림병이 지나..

(얼레빗 4320호) 돌림병, 피막에 수용하고 여제 지내고

"지금 백성들의 일은 말하자면 참으로 참담합니다. 우선 눈으로 직접 본 것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기근과 돌림병이 함께 일어나 주검이 서로 겹쳐 쌓였으며 찌는 듯한 나쁜 기운이 안팎으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백성들을 구하던 관원들까지 잇달아 전염되었습니다. 성안의 모든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