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불행하게도 거듭 흉년을 만난 데다가 돌림병까지 겹쳐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고 몹시 가난하여 잇따라 죽고 있으니, 이것만도 매우 참혹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또 제 때에 주검을 묻지 못하여 주검과 뼈가 도로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족히 화창한 기운을 침해하여 재앙을 초래할 만하다. 고요히 그 허물을 생각하면 내 실로 부끄럽고 마음 아프다." 《순조실록》 34년 1월 24일의 기록으로 흉년에 돌림병까지 겹쳐 많은 백성이 죽어가고 그 주검이 길거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처참한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에는 돌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되면 조정에서는 한성과 지방에 여제단(癘祭壇)을 설치해 돌림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달래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을 피막에 수용, 격리하고, 돌림병이 지나간 마을을 불태우는 게 고작이었지요. 또 절에서는 비명횡사했거나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지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수륙재를 지낼 때는 ‘감로도(甘露圖)’라는 불화를 걸어놓는데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의 감로도를 보면 한가운데에 아귀(餓鬼)가 등장합니다. 아귀는 먹으려는 음식이 모두 불로 변해버리는 형벌을 받았기에 항상 굶주리고 목말라하며 살아야 하지요.
▲ [감로도], 조선 18세기, 삼베에 색, 200.7×193.0cm, 국립중앙박물관
이때 아귀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있는데 곧 ‘단맛이 나는 이슬’이라는 뜻의 ‘감로(甘露)’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감로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업을 깨끗이 닦아주어 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그림이지요. 지금이야 돌림병에 걸리면 나라에서 현대의학을 동원해 치료를 해주지만, 조선시대에는 속수무책 죽어갈 수밖에 없었기에 죽고 난 뒤 감로도를 걸고 수륙재를 지내며 위로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 [감로도] 가운데 <아귀>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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