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 작가의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를 보면서, 무능하고 비겁한 고종에 화가 많이 났었는데, 그러다 보니 또 하나의 무능한 임금 인조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조를 다시 생각하다 보니 인조는 단순한 무능한 임금이 아니라, 살인자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너무 과격하다고요? 왜 제가 그런 과한 생각까지 하는지, 잠깐 얘기해 보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인조는 쿠데타로 집권한 임금입니다. 인조는 집권하면서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전면 바꿨습니다. 광해군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잘 펼쳤음에 반하여 인조는 청나라는 오랑캐 나라라고 오로지 명나라에만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이 청나라가 좋아서 균형외교를 펼쳤겠습니까? 당시 명나라는 지는 해이고 청나라는 뜨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조선을 위하여 멀리 내다보고 균형외교를 펼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균형외교를 펼치더라도 그동안의 명나라와의 관계나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준 은혜를 생각하여 표 안 나게 조심조심 균형외교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인조는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는 몽상에 빠져 어찌 오랑캐와 상종할 수 있느냐며 노골적으로 ‘친명배청(親明排淸)’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인조가 쿠데타 명분으로 광해군의 외교 실책을 들었으니, 더욱 친명배청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겠지요. 한데 명나라의 눈으로는 조선이나 청이나 똑같은 동쪽 오랑캐(東夷) 아닙니까? 그리고 핏줄로도 청나라는 조선과 한 핏줄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청나라는 처음에 금나라를 잇는다고 후금(後金)이라고 하였고, 금나라는 자기네 역사책인 《금사(金史)》에서 금나라 창시자 아골타의 7대 선조인 김행이 신라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청나라 역시 《흠정만주원류고》에서 자기네 선조가 신라인임을 밝히고 있고요. 또한 청나라 황실의 성이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한다는 ‘애신각라(愛新覺羅)’입니다. 그렇기에 청나라는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일본의 침략을 받을 때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는데, 우리가 거절했었지요. 그리고 청 황제 홍타이지는 조선에서 온 사신한테 “우리와 너희는 한 핏줄인데, 왜 너희는 우리를 싫어하고 명나라만 받드느냐?”고 힐책하기도 하였습니다.
▲ 조선 제16대 인조와 그의 부인 인열왕후가 함께 묻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릉>
그러니 인조가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던들 병자호란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은 명나라를 정복할 때 배후를 안정시켜 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청나라로서도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데, 오로지 명나라에만 매달리는 조선을 뒤에 두고 명나라 정복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거든요. 그러므로 자기네가 명나라를 정복할 때 조선은 중립을 지키고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만 있었으면 결코 청나라는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자호란 때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고 다쳤으며, 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청나라에 끌려갔습니까? 전쟁을 거시적으로만 보면 그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항복을 받아냈다는 관념으로만 생각하게 되지만, 미시적으로 그 당시 조선인들의 참상을 보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한명기 교수는 자신의 책 《병자호란》에서 한 예로 이렇게 말합니다.
“청군은 아이가 있는 여자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젊고 예쁜 여자들은 닥치는 대로 끌고 갔다. 당시 사로잡힌 여인들 가운데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청군은 이들 여인들을 끌고 가면서 아이들을 죽이거나 내팽개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저항하는 여인들은 살해되었다. 《강도록(江都錄)》을 비롯한 실기류(實記類)에 ‘포개진 시신들 사이로 젖먹이들이 어미를 찾아 기어다니며 울고 있다’라는 처참한 표현이 나오는 것은 그 같은 상황을 방증한다.”
나는 《병자호란》을 읽을 때 이 대목에서 인조에 대한 분노에 주먹이 불끈 쥐어졌습니다. 그런데 인조가 외교정책을 잘 펼쳤으면 이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조를 살인자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인조뿐만이 아니지요. 당시 인조를 보필하던 노론의 정치인들 역시 살인자라는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제 생각이 너무 비약이 심한가요?
어쨌든 이렇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합니다. 인조를 보면서 요즘 우리나라의 외교정책도 생각하게 됩니다. 윤석렬 정권이 들어선 뒤 그동안의 실리외교를 버리고 오로지 미ㆍ일에만 기대는 외교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외교 조직, 국방부 장관 하다못해 통일정책을 우선시해야 하는 통일부 장관까지 보수 강경파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입에서는 계속 북한에 대해 위협적인 언사가 쏟아집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김정은은 한술 더 떠 전쟁도 불사한다며 무시무시한 위협을 합니다. 이러니 미국의 외교 평론가 가운데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이 어느 때보다도 한층 높아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아무리 우리와 북한의 국력이 비교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겠습니까? 재래식 무기로 싸웠던 6.25 전쟁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더구나 지금은 김정은의 손안에 핵무기가 쥐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이 좁은 한반도에서 핵을 터뜨리면 한민족은 자멸한다는 것은 생각지 않고 정말 핵단추를 누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强) 대 강(强)으로 대립하면 설사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소한 것 하나가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비무장지대에서 의도치 않게 포탄이 넘어오면 지금 남북 사이 직통전화(핫라인)도 끊어진 상태에서 이게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말 지혜를 짜내어 우리가 살 수 있는 외교를 펼쳐야 할 것입니다. 호전적인 북한이 앞에 있고,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미국도 자기네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배치되면 서슴없이 우리를 버릴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 인조가 그랬듯이, 현 정부가 오로지 미국을 그리고 그 꼬봉인 일본에만 구애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안타까움을 넘어 등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이럴 때 서희 선생이 생각납니다. 서희 선생은 오래전 요나라가 침입해 들어왔을 때 맨주먹으로 담판을 벌여 오히려 강동 6주를 얻어내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구할 제2의 서희가 절실해지는 이때입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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