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흘간, 우리 사회는 귀순병사의 몸에서 기생충이 나왔다는 소식으로 들끓었다. 사람들은 병사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의 길이가 27㎝이고, 그런 게 무려 50마리나 들어 있다는 사실에 까무러쳤다. 기자들 중 일부는 내게 전화를 해서 이 사태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아마 회충일 거예요. 자세히 조사해보면 편충도 꽤 있을걸요?”
“북한의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데다 사람 똥을 비료로 쓴 탓이겠지요.”
“그런 곳에선 구충제를 먹어봤자 별 소용이 없어요. 어제 구충제 먹어봤자 오늘 또 회충알이 입에 들어오거든요.”
기생충이 화제가 된 건 2005년 김치 기생충 파동 이후 무려 12년 만의 일, 간만에 예능이 아닌 전공분야 인터뷰를 하게 돼서인지 나도 신이 나 있었다.
“이국종 교수님께, 저는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에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이 교수님의 명성과 권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몇 군데의 인터뷰를 하고 난 뒤, 위와 같이 시작되는 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글을 읽었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모든 인간은, 설령 그가 북에서 왔을지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국민과 언론은 그 병사의 상태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다면 수술 상황이나 그 이후 감염 여부 등 생명의 위독 상태에 대한 설명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15일 기자회견 당시에 총격으로 인한 외상과 전혀 무관한 이전의 질병 내용, 예컨대 내장에 가득 찬 기생충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셨습니다.”
그의 글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처 회복이 좀 지연될 수는 있을지라도, 기생충의 존재는 북한군의 생사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길이 27㎝의 기생충이 브리핑의 중심이 된 것은 빈곤, 더러움, 징그러움 같은, 기생충이 갖고 있는 나름의 함의 때문이었다. 아마도 국방부는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위해 기생충을 적극 부각시켰고, 이국종 교수는 물론이고 나 역시 그들의 전략에 이용당한 셈이었다.
또한 김종대 의원은 뒤이어 쓴 글에서 의료 행위 도중 알게 된 환자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의료법 19조 위반이라는 사실도 지적했는데, 이것 역시 ‘의사’에 속하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북한사람은 언제든 이용당해도 된다고 믿어온 내 과거가 의료법 위반에 무심했던 이유였으리라. 좋은 글은 이렇게 읽는 이에게 깨우침을 준다. 게다가 글에서 지목한 대상이 국민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국종 교수였으니, 글쓴이의 용기도 가상하게 느껴졌다.
물론 사람은 다 다르고,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는 없다. “이국종 교수가 노력하는데 거기다 대고 인격테러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정보공개를 금지한 의료법이 북한 주민에게도 적용돼야 하느냐?” 같은 반박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여기에 대해서는 논의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김종대 의원에 대한 저주였다. 어느 나라 국회의원이냐, 자신이 모시는 북한의 국격이 손상되니 불편한 것이다, 말 많으면 공산당, 진짜 기생충은 바로 너다, 관심종자냐 등등. 궁금하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은 김종대가 쓴 글을 읽어보기라도 했을까? 해당 글에서 김종대가 귀순하는 병사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의 행위가 반인도주의적이며, 우리 주권을 부정했다고 지적한 사실을 안다면, 위와 같은 비판은 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은 글의 전문을 찾아 읽기보다는 “김종대, ‘이국종 교수가 인격테러했다’” 같은 자극적인 문구만 보고 김종대를 욕한다. 가짜뉴스가 유통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구조하에서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당히 짜깁기해 인터넷에 유통하면 다들 속아 넘어가지 않겠는가? 결국 김종대는 여론에 못 이기고 사과했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대는 군사전문가로, 방산비리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사병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며 신망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국민영웅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지만, 할 말을 했다는 이유로 이런 훌륭한 정치인을 보내버리려는 기도는 광기에 가깝다.
인간의 뇌엔 모두 150억개의 세포가 있다. 그렇게 세포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개의 세포들이 협력해서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라는 설계자의 주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세포 하나만 사용해 판단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제대로 상황파악도 안한 채 무작정 공격하고 보는 일이 늘어나는 것도 다 이 때문인데, 가끔이라도 우리가 다세포생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꼭 김종대 의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를 택한 우리나라의 앞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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