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문법 범주(5)

튼씩이 2020. 10. 29. 07:53

뜻깊은 한글날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는 이번 호에서는 피동과 사동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여덟째, 피동은 주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스스로 동작이나 작용을 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동작이나 작용의 대상이 되는 것을 나타내는 범주이다. 피동을 문법 범주로 이르면 피동법, 피동으로 된 문장을 피동문, 피동문을 만드는 동사를 피동사라고 한다. 피동에 대비되는 범주는 능동이라고 한다.

 

 

 

 

(1)은 동작을 하는 주체인 ‘김 형사’가 주어로 사용된 능동문이다. 반대로 (2)는 ‘김 형사’에 의해 동작이 가해지는 대상인 ‘범인’이 주어로 사용된 피동문이다. 능동문을 만드는 동사인 ‘잡다’는 능동사이고, 피동문을 만드는 동사인 ‘잡히다’는 피동사이다. 피동사는 이처럼 능동사 어간에 ‘-히-’를 비롯하여 ‘-이-, -기-, -리-’가 붙어 만들어진다. 피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를 피동 접미사라고 한다. 피동문은 (4)와 같이 ‘-아/-어지다’가 쓰인 형식도 있다. ‘-아/-어지다’에 있는 ‘지다’는 보조 동사로서 원래는 ‘-어 지다’로 띄어 써야 할 것인데 관습적으로 붙여 써 왔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의 한글 맞춤법 해설(2018. 12. 21.)에서도 붙여 쓰도록 하고 있다. 피동사에 의한 피동을 어휘에 의한 것이라 하여 어휘적 피동, ‘-어지다’에 의한 피동을 원래는 띄어서 쓰는 통사적 구성에 의한 것이라 하여 통사적 피동이라고 한다.

 

아홉째, 사동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로 하여금 어떤 동작이나 작용을 하도록 시키거나 유발하는 것을 나타내는 문법 범주이다. 이 개념 정의에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시키는 이라고 하여 사동주,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시킴을 당하는 이라고 하여 피사동주라고 한다. 사동을 문법 범주로 이르면 사동법, 사동으로 된 문장을 사동문, 사동문을 만드는 동사를 사동사라고 한다. 사동에 대비되는 범주는 주동이라고 한다.

 

 

 

 

(5)는 동작을 하는 주체인 ‘진희’가 주어로 사용된 주동문이다. 그러나 (6)은 ‘진희’가 ‘언니’에 의해 동작을 하게 되는 대상으로 나타난 사동문이다. 주동문을 만드는 동사인 ‘먹다’는 능동사이고, 사동문을 만드는 동사인 ‘먹이다’는 사동사이다. 사동사는 이처럼 주동사 어간에 ‘-이-’를 비롯하여 ‘-히-, -기-, -리-, -우-, -구-, -추-’ 등이 붙어 만들어진다. 사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를 사동 접미사라고 한다. 사동문은 (7)과 같이 ‘-게 하다’가 쓰인 형식도 있다. 사동사에 의한 사동을 어휘에 의한 것이라 하여 어휘적 사동, ‘-게 하다’에 의한 사동을 통사적 구성에 의한 것이라 하여 통사적 사동이라고 한다. 어휘적 사동이 짧다고 하여 짧은 사동(단형 사동), 통사적 사동이 길다고 하여 긴 사동(장형 사동)이라고 하기도 한다.

 

 

 

 

(8)은 사동문이기는 하나 (6), (7)과는 달리, 사동주에 의해 피사동주가 어떤 동작이나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태가 변화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예는 엄밀히 말하면 위에서 보인 사동의 정의와 맞지 않으나, 서술어 부분의 형태가 (6), (7)과 같기 때문에 학교 문법에서는 사동으로 다루고 있다.

 

 

 

 

(9)에서는 사동주인 ‘엄마’가 직접 아이에게 밥을 먹여 주는 행위를 하여 ‘아이’가 밥을 먹는 행위에 참여하는 반면, (10)에서는 사동주인 ‘선생님’이 ‘학생’이 책을 읽는 행위를 말 등을 통해 시키기만 했을 뿐 그 행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사동주가 피사동주의 행위에 함께 참여하는 사동을 직접 사동, 그렇지 않은 사동을 간접 사동이라고 한다. 짧은 사동은 직접 사동과 간접 사동 양쪽으로 자주 쓰이나, 긴 사동은 거의 모든 경우에 간접 사동으로 쓰인다.

 

 

피동과 사동의 용어 사용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능동’, ‘주동’은 각각 ‘피동’, ‘사동’과 대비되는 개념을 편의상 나타낸 것일 뿐 별개의 실체는 아니다. 곧 세 개의 실체에 대해 네 개의 용어가 있다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active(능동/주동)’, ‘passive(피동)’, ‘causative(사동)’의 세 개의 용어만 있을 뿐이다. 예컨대 ‘밥을 먹다’라는 똑같은 표현에 대해 ‘밥이 먹히다’라는 피동 표현과 ‘밥을 먹이다’라는 사동 표현이 성립된다. ‘밥을 먹다’를 ‘밥이 먹히다’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볼 때에는 능동이라고 부르고, ‘밥을 먹이다’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볼 때에는 주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