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집값은 언제나 떨어질까?

튼씩이 2020. 11. 7. 19:21

집값은 언제나 떨어질까?

 

 

의식주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자기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집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 간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2020년 8월 3일자 헤럴드경제에 실린 “서울서 내집 마련, 12년치 월급 다 모아야 가능” 같은 기사는 제목만으로도 소위 ‘서민’이 서울에서 집을 갖는 것이 녹록지 않음을 잘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집값, 특히 서울의 집값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집값’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의식주와 관련하여 한국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해 왔을까? 다음 자료를 통해 살펴보자.

 

 

‘쌀값’➞‘땅값’➞‘집값’

▲<그림 1> ‘쌀값, 집값, 땅값’의 연도별 사용 빈도(동아일보 역사 말뭉치)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집값’의 사용 빈도는 2000년 이후에 와서야 크게 높아졌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쌀값’, ‘땅값’, ‘집값’ 중에서 ‘쌀값’이나 ‘땅값’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몰려 있었다. ‘쌀값’의 빈도는 1970년대 중반까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을 테고, 그런 분위기에서 쌀값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1960년대 말에 ‘쌀값’의 빈도가 최고조를 보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69년 1월, 정부에서 <쌀값 통제령>을 내린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쌀값 통제령>은 서울, 부산, 대구 등 3대 도시에서 유통되는 쌀의 소매가격을 통제하여, 당시 한 가마에 5,600원까지 오른 쌀값을 5,220원에 묶어 두고자 한 정책이다. 산업화에 매진했던 당시에 쌀값을 안정시켜 저임금 산업 구조를 유지하고 수출과 경제성장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1) <쌀값 통제령>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당시 경제 구조상 ‘쌀값’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1970년대 후반부터는 ‘땅값’의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며 1978년과 1990년에 각각 최고조를 이룬다. 또한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들어서기 전까지 ‘땅값’은 ‘쌀값’, ‘집값’을 제치고 가장 높은 사용 빈도를 보인다. ‘땅값’은 주로 개발이나 투자와 관련된 맥락에서 사용되었으며 이는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고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집값’의 빈도가 치솟은 것은 2000년대 초, 즉 외환위기 이후의 일이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이후 주택 공급이 줄면서 집값이 크게 올랐고, 사상 초유의 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남아도는 자본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으로 몰렸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안정성이 높다고 보이는 부동산을 대안으로 찾은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집값 상승은 서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문제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벌써 20년여 년이 흘렀다. 그런데 집값은 지금도 상승 중이고, 집값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집값’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로서 존재하고 있다.

 

1) 서울경제, 「1969년 쌀값 통제령」, 2017년 1월 24일.

 

1979년, ‘아파트’가 ‘부동산’을 넘다.

 

같은 집이라도 다 같은 집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며, 집이라고 하면 ‘아파트’를 연상할 정도로 아파트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아파트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주택 유형의 하나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중요한 투자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러면 ‘아파트’의 사용 빈도는 어떤 추이를 보일까? 아울러 ‘부동산’과 ‘아파트’는 어떤 관계를 보일까?

 

 

‘어파아트, 아파아트’ 등으로 표기되던 ‘아파트’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아파트’로 일관되게 쓰이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며, 출현 빈도가 급증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그 이후로 꾸준히 높은 빈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1970년에 이르러 ‘아파트’의 빈도가 갑자기 뚝 떨어진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부동산’이 ‘아파트’ 추이와 반전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아파트’가 ‘부동산’의 빈도를 넘어선다. 이는 부동산 투자의 중심에 아파트가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는 거주 공간으로서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으로서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음을 보여 준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의 안정화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중요한 시책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부동산 정책을 잘못 시행하게 되면 정부는 엄청난 비난과 책망을 들어야 했다. 고령화, 저출생, 높은 아파트 가격, 인구의 과밀화 현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아파트값이 머지않은 미래에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아파트값이 오르건 떨어지건 당분간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의 하나로서 ‘아파트’가 생명을 유지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과거에 사회적으로 중요했던 ‘쌀값’이 이제는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처럼, ‘집값’, ‘아파트값’도 언젠가는 우리 관심에서 멀어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는 또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말이다.

 

 

글: 김일환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