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승부와 승패, 같은 듯 다른 쓰임새

튼씩이 2022. 2. 24. 08:00

눈과 얼음의 스포츠 축제인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은 참가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전 세계인들 앞에서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들이 펼치는 뜨거운 승부와 엇갈린 승패는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승자의 숨길 수 없는 환호가 있는가 하면 패자의 쓰디쓴 눈물과 낙담이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한 스포츠 세계에서 올림픽만큼 참가 선수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승부와 승패, 이 두 단어는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닮았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승부’와 ‘승패’를 일상에서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단어는 완전히 같은 말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승부’는 ‘이김과 짐’으로, ‘승패’는 ‘승리와 패배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승부와 승패는 얼핏 보면 완전히 동의어로 보인다.

 

 

이 예문은 승부와 승패가 구별 없이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모든 경우에서 둘의 쓰임이 같은 것은 아니다.

 

 

위의 문장에서는 ‘승부를 걸다’와 ‘승부가 나다’는 자연스럽지만 ‘승패를 걸다’와 ‘승패가 나다’는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이러한 이유는 ‘승부’라는 말에 그만의 어감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다’라고 했을 때 ‘승부’는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기고 지는 것을 겨루는 일’이라는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승부 근성이 강하다고 했을 때에도 상대와 겨루어 반드시 이기고자 하는 근성이 강하다고 읽어야 의미가 통한다. 그런 점에서 ‘승부를 걸다’는 ‘상대(경쟁자나 적수)와 겨루는 일에 모든 것을 걸다’라는 뜻을, ‘승부가 나다’는 ‘상대와 겨루어 이기고 지는 문제가 결정이 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의미는 ‘명승부’, ‘승부사’, ‘승부욕’과 같은 파생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승부’는 이처럼 ‘명-’, ‘-사’, ‘-욕’과 같은 접사와 결합할 뿐만 아니라 ‘-하다’와 결합하여 ‘승부하다’ 즉 ‘경기, 게임, 싸움, 사업 등에서 어떤 요소를 장점으로 삼아 겨루다’라는 동사를 만들 수 있지만 ‘승패’는 그럴 수 없다.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도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명승부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초반의 악재를 딛고 눈부신 선전을 보여 주었다. 쇼트 트랙 종목에서 값진 메달이 연달아 나오는가 하면,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는 차준환 선수가 한국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5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몸도 마음도 더욱 성장한 차준환 선수는 이제 다음 올림픽의 유력한 메달 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전 평창 동계 올림픽 챔피언인 일본의 하뉴 유즈루 선수는 피겨 역사상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쿼드러플 악셀 점프를 시도하며 주목을 받았다. 승패를 떠나서 불가능의 경지에 한 걸음 나아간 도전 정신에 많은 이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준 선수들에게 승자와 패자라는 가늠은 큰 의미가 없다. 올림픽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아닐까. 용기를 가지고 일생일대의 승부를 거는 모든 선수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 참고 문헌 -

안상순(2022), 『우리말 어감 사전』,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