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나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대해 울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방향 지시등도 켜지 않고 갑자기 앞으로 끼어든 앞차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면서 ‘운전 똑바로 하라’고 소리 지를 때 우리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당이란 온당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내게 주어진 보상과 처벌이 내가 한 행동이나 태도에 걸맞지 않을 때 우리는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는 ‘부당함’에 대해서 생각합니다만 정작 우리를 가장 부당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내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를 얕잡아 보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내가 더 힘이 세고 돈이 많았다면 나를 다르게 대하지는 않았을지 자꾸만 생각하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험하는 ‘부당함’은 나 자신을 온당하게 대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당한 것은 아닌지 자꾸 의심하게 되거나 실제로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의심하는 모든 부당함이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피해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온당하게 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나를 온당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나를 온당하게 대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우리는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났을 때 종종 자기 자신을 비난하곤 합니다. 또 명백한 나의 실수인데도 지나치게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지요.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도, 또 지나치게 과장해서 방어하거나 칭찬하는 것도 모두 내게 온당하지 않은 일들입니다. 스스로를 온당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이를 수용해야 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나 내게 있는 것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지닌 것만을 높게 평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생각한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느낌, 나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대해 스스로 만들어 낸 이야기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가진 것이나 내게 있는 것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내가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생각할 때 화가 많아지고 쓸데없는 것들을 욕망하게 됩니다. 내게 있을 필요가 없거나 내가 오히려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탐내게 되지요. 바로 이런 불필요한 욕심이 갈등을 만들고 폭력을 부릅니다. 그리고 이 폭력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하기도 합니다. 때론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을 향하기도 하지요.
나 자신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나의 단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내가 가진 좋은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가진 한계도 보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보고 있으면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남의 방귀는 구리고 내 방귀는 달다’고 합니다. 나에게 있는 좋은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게 있는 좋지 않은 것이 더 커 보이는 것입니다.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향한 아주 작은 비난에도 더 크게 화를 내게 됩니다.
스스로를 온당하게 대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방어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방어하느라 다른 사람을 더 크게 헐뜯고 더 심하게 비난하게 되는 거지요.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말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본다’, ‘뒷간 기둥이 물방앗간 기둥을 더럽다 한다’, ‘겨울바람이 봄바람보고 춥다 한다’, ‘가마가 솥더러 검정아 한다’,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 등의 옛말이 이처럼 사람들의 못난 속내를 보여 줍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인정하면 쓸데없는 변명과 방어의 말들이 줄어듭니다. 내가 한 실수가 드러났을 때, 감추고 싶었던 내 과실이 온 세상에 밝혀졌을 때 솔직하게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걸음 더 나아간 내일을 기약하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지금 이 작은 실수보다 더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진 사람이니 말입니다.
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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