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
위 속담들은 모두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이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도 익히 알고 있던 삶의 지혜이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은 특히 사회생활에서 두드러진다. 사회에 한 발짝 내딛는 순간부터, ‘말’은 단순히 ‘대화’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설득과 타협’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신 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다니엘 샤피로 교수는 하버드협상연구소(Harvard Negotiation Project)의 부책임자로서 말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정부 관리, 협상 전문가, 법률가, 심리학자 등을 대상으로 설득과 협상을 교육하는 그야말로 ‘말’ 전문가이다. 그는 상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면 먼저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는 말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즉, 상대의 긍정적인 감정을 말로써 이끌어 내기만 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일까?
인정하는 말을 하라!
하버드협상연구소는 특별한 실험을 진행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들이 사용하는 말을 분석해 그들이 이혼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실험이었다. 실험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피실험자인 신혼부부를 한 쌍씩 실험실로 들여보낸 후, 실험에 앞서 혈압과 생리적 흥분도, 안면 표정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한다. 그리고 부부를 긴 의자에 편안하게 앉도록 안내한 후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하는 것이다.
“두 분은 최근 함께 겪었던 갈등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이곳에서 싸우거나 다투지 마시고 그냥 당시 상황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연구원의 요청에 따라 실험에 참가한 부부들은 각각 그들이 겪었던 일화를 풀어 놓았는데,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연구팀은 단 1분 30초 가량의 말을 분석해 이 부부가 끝까지 결혼 생활을 지속할지, 아니면 이혼할지를 약 9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부부 생활 유지 기간에 대해서도 1년, 3년, 5년, 10년 등 세세한 단위로 예측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실험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 부부의 말에는 비방의 말과 인정의 말 비율이 ‘1:5’ 정도였다고 한다. 갈등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을 비방하는 말을 한마디 했다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말은 다섯 번을 더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 이상해.”라는 말을 했다면 “물론 당신의 입장을 이해해.”라는 이해와 공감의 말을 다섯 번 정도 하는 식이다. 반면 곧 이혼할 것으로 예측된 부부의 경우, 비방과 인정의 말 비율이 ‘1:1’이었다. 부정적인 말과 공감하는 말 비율이 거의 팽팽했던 것이다. 다니엘 샤피로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놓고 “부정적인 말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긍정의 표현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즉, 부정적인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을 인정하는 표현이 풍성하면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말을 하려면?
뉴욕에서 2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지하철 타는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자는 철로 옆 벤치에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여자에게 돌진한 남자는 아기를 빼앗은 다음 지하철 역내 청소 도구 보관실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남자와 아기가 있는 청소 도구 보관실의 문을 두드리며 당장 문을 열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문 안쪽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이 흘러 나왔다.
“이 아이가 천사라면 내가 사랑해 줄 텐데. 하지만 이 아기가 만약 악마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기를 훔친 범인은 정신 분열 증세가 있는 남자로 자신을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였던 것이다. 경찰은 계속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위협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의 말을 반복했다. 경찰들은 문 두드리기를 멈추고 남자를 구슬리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썼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아기는 천사니까요. 그 아기는 천사예요. 그러니까 얼른 문을 여세요.”
경찰의 말에 남자는 더욱 광기 어린 목소리로 “천사, 천사, 천사라고? 어떻게 알아? 이 아기가 천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지?”라고 반문했다. 처음에 경찰들은 범인과 공감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문을 열라고만 재촉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범인을 달래기 위해 너무 지나치게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범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척한 꼴이 된 것이다. 그때 현장에 투입된 다니엘 샤피로 교수는 범인의 입장에서 그의 망상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말이 끝나자 굳게 닫혔던 보관실의 문이 열리고 아기를 안은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상대의 반응을 예상할 수 없었던 긴장된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다름 아닌 ‘상대를 어떻게 진심으로 인정할 것인가’였다.
지난 2012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2’의 기조연설자였던 다니엘 샤피로 교수는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는 말하기의 첫 번째 비결로 ‘인정할 것’을 꼽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에서 인정의 효과에 대해 “인정의 효과는 단순하고도 즉각적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반면 제대로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삼가고 더욱 협력하려고 노력한다.”라고 귀띔한다. 누군가와 협상을 앞두고 있는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상대를 인정하는 말’을 잊지 말자!
참고 문헌
다니엘 샤피로, 로저 피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 한국경제신문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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