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친절한 '한국어 선생님'

튼씩이 2022. 7. 15. 07:51

영국에는 런던을 상징하는 2층 버스가 있다. 지금 저 멀리서 버스가 온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나는 버스를 탄다. 자, 이제 어디에 앉을 것인가? 잠시 마음을 정하고 자리에 앉자.

 

오늘은 ‘버스 자리와 성격’의 상관성을 확인한 한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우선, 버스의 가장 앞에 앉았는가? 그렇다면 비교적 외향적인 편이다. 특히 버스 2층의 맨 앞자리를 선호한다면 리더의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만약 뒷자리에 앉았다면 고독을 즐기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혹시 1층과 2층의 계단에 앉았다면 그는 스스로를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버스의 여러 자리 중에서도 중간쯤을 선호하는 사람은 소통력이 큰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강의 중 대학생들에게 손을 들어보게 했는데, 대학생들은 이런 설명이 어느 정도 맞는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결과가 기가 막히게 맞는 사례를 한국의 버스 안에서 만났다. 차에 막 올라탄 승객이 잔돈이 없는 버스 기사와 승강이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 찰나, 버스 중간쯤에 앉은 한 아주머니가 ‘누가 돈 바꿔 줄 분 없으세요?’라고 하더니, 승객들 가운데서 기어이 잔돈을 마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소통력 강한 한 사람의 중재로 어수선하던 버스는 곧 평화를 되찾았다. 그런데 이 상황을 보고 있던 한 이방인이 놀란 얼굴을 한다. ‘한국은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 하는 표정으로 보였다.

 

 

한국은 사회 구성원이 긴밀히 연결된 고맥락 사회이다. 학문적인 견해뿐만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이런 양상을 확인할 때가 많으니 이견이 없을 일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모습을 두고 정이 많다거나 친절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는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사회문화적 압박으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온라인 이곳저곳을 찾아보면 이웃에 정이 많은 한국인, 외국인에게 친절한 한국인이란 제목의 편집 영상이 무수히 쏟아진다.

 

사전적 정의로 ‘정’이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같은 단어로 영어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면 ‘애착, 보살핌’에 가까운 것으로 나온다. 한자를 모르는 서양의 언어라서 ‘정’ 자체에 대한 해석보다는 이어질 만한 마음 상태나 연상되는 행위로 풀이한 것일까? 혹은 실제로 한국인을 만난 경험을 기억하고 되새긴 풀이일까? 더 놀라운 것은, ‘정’은 원래 한자어인데도 중국어 ‘정’과 속뜻이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한 예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유명한 한 초코과자가 있다. 포장지에 크게 쓴 ‘정(情)’ 하나로 한국 과자 시장에서 성공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 과자가 정작 중국에서 광고할 때는 ‘좋은 친구’란 표현을 썼다. 두 나라에서 정의 속뜻과 범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국 사회에 문화적으로 깊이 자리 잡은 ‘정’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현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한국어를 가르치는 책에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한국어책에 흔히 나오는 ‘근거 없는 주장 두 가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나는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라는 예문이다. 문법 ‘-지만’을 배우고 연습할 때 많이 쓰이는 예문인데, 외국어 학습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고 원래 어려운 일을 겪을 때는 재미가 없는 법이다. 어려운 것이니 즐겁게 배우라는 유머로 이해해야 할까?

 

다른 하나는 ‘한국어 선생님은 친절해요.’라는 예문이다. ‘예쁘다’, ‘아름답다’와 같은 외모로 평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온 예문이기도 하다. 교직은 천직이라는 말도 있듯, 교실에서 학습자들과 밀고 당기면서도 가르쳐 내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못 할 일이다. ‘친절하다’는 것은 교실을 행복하게 이끌어가는 한국어 선생님에 대한 좋은 평가라는 점도 안다. 그렇지만 ‘친절하다’는 적성이 아니라 성격을 말하는 표현으로, 직업이 같다고 해서 사람의 성격이 같을 수 있을까?

 

 

‘친절하다’는 초급 단계에서 형용사가 들어가는 문장을 연습하기 위해 한국어 책에 자주 나온다. 한국어 교육 내용 중 가르칠 어휘 10,635개를 선정한 어휘 목록에서 ‘친절하다, 친하다, 친구’는 한국어의 가장 초급인 1급 어휘로 등재되어 있다. 1급 어휘는 735개에 불과하므로 예시 문장을 생성하거나 연습할 때 자주 활용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불친절하다’는 중급에서도 높은 단계에 해당하는 4급 어휘라는 점이다. 주로 학습자에게 유용하거나 문화적으로 적합한 것이 교육용 어휘로 선정되는데, 친절한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범문화적으로 가치로운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관계 중심적인 고맥락 사회인 한국에서 ‘친절하다’고 말하는 학습자가 ‘불친절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속뜻이 있는 것일까?

 

한편, 친절함은 한국어 교사에게도 암시적 신호로 작용한다. 직접 눈앞에 있는 초급 교재 다섯 권만 빼 보아도, “누가 친절해요? / 선생님이 친절해요.”, “한국어 선생님은 예쁘고 친절해요.”, “김 선생님은 친절하세요.”와 같은 예문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외국어로 8개 언어를 배워봤지만, 외국어 교재에서 이러한 예문이 한국어책만큼 나오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선생님만이 아니다. “그 가게는 값이 싸요? / 네, 아줌마가 친절하고 값도 싸요.”와 같은 예문에서는 묻는 사람이 요청하지 않은 정보인데도 ‘친절하다’가 포함된다. 한 편지글 예문에서는 “다음 주에 이사할 거예요. 친구 미나 집에서 살 거예요. 미나는 참 좋은 친구예요. 가족도 친절해요.”라며 한국 친구의 가족도 친절의 테두리에 넣었다. 또 다른 책에서는 “부산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합니다.”처럼 대도시 시민의 성격을 규정하였다.

 

이쯤 되면 한국인이라면 시민으로서도 누군가의 가족으로서도 친절해야 할뿐더러, 친절이란 특정 직업인으로서도 갖춰야 할 덕목처럼 보인다.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민간 외교관이라는 직업 정신으로 한국어 선생님이 학생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실제로 한국어 선생님 대부분은 충분히 친절하다. 그런데 교사가 갖출 덕목에 친절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 교원을 양성하는 전문교육기관에서는 교사가 갖출 전문성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야기의 핵심은, 사회문화적 특성을 지닌 어떤 말이 이데올로기처럼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독 ‘친절하다’ 하나만이 아니라, 외모지상주의나 성역할 고정관념 등 우리가 주목하고 판단해야 할 말들이 많다. 교과서는 이미 그 자체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어떤 말이 언어 교재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는 더욱 유의해서 살펴야 한다. 오늘 내가 가르칠 부분에서 깁고 더할 부분은 없는지, 익숙한 말이지만 말의 범위와 속뜻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확인하는 일은 교사의 몫이다. 우리는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학습자에게 외국어인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이기 때문이다.

 

 

이미향(영남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