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재미있는 우리 속담 - 까마귀 열두 번 울어도 까욱 소리뿐이다

튼씩이 2022. 7. 28. 07:57

5세기경 신라 임금 비처왕이 남산 그늘 아래 길을 거닐다가 어느 정자 근처에서 울고 있는 까마귀와 쥐를 만났습니다. 쥐가 말하기를 까마귀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 보라 했지요. 기이한 일인지라 왕은 쥐가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왕이 까마귀가 이끄는 곳에 이르러 만난 것은 서로 싸우고 있는 돼지 두 마리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다가 까마귀 간 곳을 놓치고 말았는데 갑자기 못에서 한 늙은이가 나와 왕에게 글이 적힌 종잇조각을 하나 내밀었지요. 그 글 겉봉에, ‘이 글을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왕이 두 사람이 죽기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여겨 글을 열어 보지 않으려 했으나 옆에서 나랏일에 관한 것들을 앞서 예견하는 일관日官이 죽일지도 모르는 두 사람은 뭇 백성이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은 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왕이 글을 열어 보니 ‘거문고갑을 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왕이 궁궐에 돌아가 시키는 대로 하니 궁에서 머무르는 중이 궁궐의 여인과 남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으로 인해 왕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안에 정월 초 몇몇 정해진 날에는 특별히 모든 일을 삼가 조심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이 사건으로부터 정월대보름날 오곡밥을 먹는 풍속이 유래되었습니다. 정월 15일이나 16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 정하고 까마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때 까마귀밥이라고 하여 찰밥이나 약밥을 지어 젯상에 올린 데서 정월대보름 오곡밥 먹는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경주에 가시면 남산 자락에 있는 서출지書出池라는 연못에 꼭 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가 깃든 장소랍니다. ‘서출지書出池’는 글이 나온 못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이야기를 놓고 보면 우리 풍속에 ‘까마귀’는 꼭 나쁜 징조를 암시하는 새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도 속담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대부분 그다지 좋지 않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삼족오三足烏’의 전통을 되새겨보아도 까마귀에 대한 이런 문화적 편견은 그 유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그저 다만 유학적 상징의 전통 속에 ‘까마귀’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실마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뿐입니다.

 

속담에서 까마귀는 하찮고 보잘것없고 속이 시커멓고 음흉스러운 대상을 가리키는 상징적 존재로 등장합니다. ‘까마귀 열두 번 울어도 까욱 소리뿐이다’, ‘까마귀 열두 가지 소리 하나도 고울 리 없다’, ‘까마귀 하루에 열두 마디를 울어도 모두 송장 먹은 소리다’, ‘까마귀 열두 소리 하나도 들을 것 없다’ 등의 옛말 속에 까마귀는 속이 시커멓거나 속이 텅 빈 사람을 빗대어 표현하는 동물로 나타나곤 합니다. ‘까마귀 훤칠해도 백로 될 수 없다’, ‘까마귀 백로 되기 바라랴?’, ‘까마귀가 학이 되랴?’ 등의 속담에서도 까마귀는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타고나 결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대상으로 그려집니다.

 

이들 옛말에서 까마귀가 이처럼 부정적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까마귀의 검은색에 대한 문화적 편견에서 비롯된 관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검다’는 말의 의미를 ‘깜깜하다’, ‘아무것도 없다’, ‘음흉하다’, ‘어둡다’, ‘부정적이다’ 등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상의 겉모습만으로 대상의 가치를 온전히 판단할 수 없듯이 까마귀 역시 검은색 피부만으로 평가 절하 되기에는 아까운 생물이지요. 높은 산에서 하늘을 나는 검은 날갯짓의 이 새는 때로 얼마나 근사해 보입니까? 그러니 ‘까마귀 겉이 검다고 살도 검을까?’라는 옛말이 오히려 새삼스럽습니다. 드러난 모습 이면의 가치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눈이야말로 세상살이의 소중한 심미안審美眼입니다.

 

 

글_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