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언어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방송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하다. 소통의 역할이 파괴되면서 세대 간 격차는 더 벌어졌고, 혐오와 차별의 표현은 많아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 기관과 언론도 우리말 파괴의 온상이 됐다. ‘당신은 차별이 보이시나요?’ 김지혜 저자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대개 차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 감수성’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언어에도 차별 감수성이 있다. 이를 ‘언어 감수성’이라고 한다. 언어 감수성은 언어 표현에 대한 민감도일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인간관계를 구성하고 작동시켜 온 인식체계에 반응하고 질문할 수 있는 감각이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언어 감수성에 비해 우리의 말에는 여전히 복합적인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 따라서 모두가 ‘언어 감수성’의 현주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에서 언어 사용의 행태와 언어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살펴보기로 했다.
언어 감수성이 변화한 사례
우리는 지금도 ‘결정장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김지혜 저자는 토론회 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중 ‘결정장애’라는 말을 했고, 토론회 후 참석자 중 한 분이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라고 조용히 물었다는 사연을 책에 담았다.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18년 모 대학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교수 한 분이 수업시간에 특별한 의도 없이 ‘남자친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한 학생이 메일로 정중하게 성이 드러나지 않는 ‘애인’ 혹은 ‘연인’이라는 말로 대체해주기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로 차별어에 대한 인식 수준이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언어 감수성의 변화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언어 감수성 회복을 위해 활동하는 사회단체를 살펴보았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2020년 11월부터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상에서 쓰이는 몇몇 언어 표현에 어린이·청소년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깔려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캠페인이다. 단체가 지난해 10월 15일부터 5일간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6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사회는 나이에 따른 수직적 문화 및 어린 사람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문항에 83.06%가 동의했다.
단체는 대표적인 차별 표현 10개를 선정했다. 그중 ‘잼민이’는 인터넷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제공하는 음성지원 서비스의 어린 남자아이 이름 ‘재민’을 따서 만든 신조어로, 어린이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데 자주 쓰인다. 단체는 “잼민이는 ‘초딩’, ‘급식’ 같은 과거의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멸칭을 이어받아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 쓰임새가 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소수자들에게 우스운 별명을 만들어 부르는 것은 이들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뭉뚱그리고, ‘일반적·정상적 사람’과는 다른 특징을 강조해 차별을 재생산하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지음 제공)
‘사춘기’, ‘중2병’ 등도 차별적 표현으로 봤다. 단체는 “생리적 경향성이나 특징으로 그 집단을 모두 설명하려 하거나 평가하는 이유로 삼아선 안 된다”며 “청소년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나 부당한 일에 대해 불만을 표할 때, 상황을 성찰하거나 대화하려 하기보다는 ‘사춘기인가 봐’ 하며 청소년 시기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청소년 이하 연령대를 일컫는 호칭으로 언론이 자주 쓰는 ‘양’, ‘군’도 비청소년을 일컬을 때 쓰는 ‘씨’, ‘님’처럼 성·나이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꿔 쓸 것을 단체는 제안했다.
김해문화재단 ‘말모이’
또한 김해문화재단은 2019년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정부 공모사업 캠페인 ‘말모이’를 시작하며 일상 속 차별이나 혐오 표현을 찾았다. 선정된 단어들은 급식충, 된장녀, 틀딱충 같은 전형적인 혐오 표현에서 미망인, 머리를 얹다(올리다), 여직원, 효자 상품 같은 관습적인 표현, ○○조무사(기존에 남성들이 해온 직업군에 속한 여성을 ‘제 역할을 못한다’는 부정적인 편견을 담아 비하하는 말),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 병신샷(술자리에서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주는 벌주), 흑형(흑인을 대상화하고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표현) 같은 신조어를 포함한다. 또한 학부모를 보호자로, 낙태를 임신중단이나 임신중절로 바꾸는 것처럼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고 편견 대신 사실만을 담은 표현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말모이 캠페인의 장애인 네트워크 ‘별의별 말을 찾는 사람들’이 찾은 표현 중에는 반팔과 외발자전거가 있다. 팔의 길이나 두 개 다리를 ‘정상’의 기준으로 삼는 표현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면 반소매나 한바퀴자전거로 표현하자는 제안이다.
평균 68세 노인 네트워크 ‘말모이 품앗이: 희망 품은 황혼’에서는 나이든 남성은 ‘사장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여성 노인은 ‘어머님’, ‘할머니’라고 하는 게 기분 나쁘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무언가를 깜빡하였을 때 ‘니 치매가?’라고 말하는 표현이 노인과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해문화재단 제공)
우리의 노력
언어 감수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비결이다. 언어감수성을 높이려면 차별과 혐오, 시대착오적인 가치를 담은 '낡은 단어'를 버려야 한다. 혹시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기에 적절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현재에 안주하는 대신 언어 감수성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언론과 정부의 역할도 크다. ‘깜깜이’라는 표현은 언론에서 자주 등장해 시각장애인을 비하한다는 지적에 선뜻 공감하기 힘들 수 있지만, 지난해 방역당국이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깜깜이 감염’ 대신 ‘감염경로 불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공감대가 넓어진 것이 긍정적인 예다. 차별과 혐오 표현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무분별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한 번 배운 언어는 평생토록 영향을 줄 수 있다. 학교뿐 아니라 평생 교육원 등 범위를 넓혀 어휘에 대한 교육을 더 늘려 스스로가 ‘내가 차별어를 쓰고 있지 않는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부적절한 언어의 대체어를 정하고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사회와 언어의 변화에 관심을 가진다면, 더 나은 언어 감수성으로 유연하고 따뜻한 사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9기 정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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