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찰나의 우리말 - '당신'은 '너'의 높임말 아닌가요?

튼씩이 2022. 8. 2. 07:53

하루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공대 교수님을 만났다. 그 교수님은 반색을 하며 인사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라고 했다. 한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와 관련한 질문을 했는데 답을 하기가 좀 궁색해서 얼버무렸다며 말이다.


학생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이 질문을 듣고 그 공대 교수님은 당황했다고 한다. ‘당신’이라는 말이 분명 ‘너’보다는 상대를 높이는 말인 것은 분명한데, 학생이 자신에게 ‘당신’이라고 한다면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왜 부적절한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가 없어서 그냥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서 한국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 일이 잦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왜 그런지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던지는 질문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공대 교수님이 그 질문에 당황한 이유도, 그렇게 사용해 왔지만 왜 그런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황스러운 만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감사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국인 학생의 말처럼 ‘당신’은 ‘너’의 높임말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을 ‘당신’이라고 불렀다가는 싸움이 생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운전자가 위험하게 끼어들기를 했다. 차선을 지키며 안전하게 운전을 하던 사람은 사고가 날 뻔한 상황에 화가 났다. 화가 난 운전자는 차선을 바꿔서 위험하게 끼어들기를 했던 운전자의 옆 차선으로 분노의 주행을 시작한다. 그러다 나란히 신호등에 멈춘다. 화가 난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위험하게 끼어들기를 한 운전자에게 소리친다.

“당신, 그렇게 위험하게 운전을 하면 어떻게 해!”

그때까지 눈도 깜짝하지 않던 상대편 운전자는 이 말을 듣고 창문을 내린다.

“뭐라고? 언제 봤다고 당신이야! 그리고 왜 반말이야! 나이도 어린 것이! 너 몇 살이야!”

이쯤 가면 끼어들기 문제는 어느덧 논점에서 사라진다. 말 문제로 논점이 이동되었다. 말 문제로 논점이 이동되면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싸움이 되어 버린다. 이 상황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이제 피해자와 가해자는 서로 자리를 바꾸게 된다. 상대의 난폭 운전으로 마음이 철렁했던 난폭 운전의 피해자는 이제 언어폭력의 가해자가 됐다. 한편, 끼어들기를 무리하게 했던 난폭 운전의 가해자는 이제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됐다.


이렇게 ‘당신’은 ‘너’를 높이는 말인 듯하지만 말하면서 대화 상대를 ‘당신’이라고 했다가는 말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말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 가장 빨리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다짜고짜 처음 만난 사람을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일 것이다.


물론, ‘당신’이라고 한다고 무조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장면도 있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노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첫 부분)

()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 당신의 동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고용노동부 노사발전재단 광고)

() 당신의 관심이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광고)

() 알고 있나요? 우리는 언제나 당신 곁에. (한국산업인력공단 광고)

 

(가)에 보인 노래를 듣고 “뭐라고? 당신이라고? 언제 봤다고 나더러 당신이래?” 이렇게 화를 낼 사람이 있을까? (나), (다), (라)에 보인 것은 광고에 쓰인 ‘당신’이다. (나)와 (다)는 동영상 광고이고, (라)는 인쇄물 광고이다. 광고에 쓰인 당신은 그 광고를 듣고 보는 사람을 지칭한다. 하지만 그 광고를 듣고 보는 사람은 그 ‘당신’ 때문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듣거나 보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광고란 돈을 들여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것인데 광고를 보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리는 물론 없다.

왜 어떤 ‘당신’은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고, 어떤 ‘당신’은 듣는 사람을 높이는 것으로 들리게 하는 것일까?


두 ‘당신’을 잘 살펴보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의 당신, 즉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당신은 듣는 사람이 특정한 사람이다. 말하는 사람의 대화 상대자다. 반면에 뒤의 당신, 즉 듣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으로 들리는 당신은 듣는 사람이 특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그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 그 광고를 듣거나 읽는 모든 사람이다. 즉, 불특정 다수가 ‘당신’으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앞에 있는, 특정한 대화 상대자가 아니다.


한국어에서 ‘너’나 ‘당신’과 같은 2인칭 대명사는 사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상대와 말을 하면서 2인칭 대명사인 ‘너’나 ‘당신’으로 상대를 부를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너’는 친한 친구나 동생에게 쓸 수 있고, ‘당신’은 부부 사이에서 쓸 수 있는 정도다. ‘너’나 ‘당신’과 같은 2인칭 대명사는 공손한 장면에서 절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한국어처럼 2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공손성의 이유로 꺼려지는 언어는 전 세계 언어 207개 중 7개에 불과하다. 그 7개 언어는 한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크메르어, 버마어이다.1)


특정한 대화 상대자가 있는 상황에서 말을 하다 보면 상대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상대를 2인칭 대명사로 부를 수 없으니 대신 부를 말이 필요하다. 부를 말이 필요하다면 대화 상대자의 이름을 부르면 되지 않을까 싶겠지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대상은 더 한정적이다. 결국, 한국어로 말을 할 때는 대화 상대자를 부를 말이 따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호칭어다. 한국어에 호칭어가 발달한 이유가 바로 한국어가 가진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이제 그 공대 교수님은 외국인 학생에게 받았던 질문에 충분히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너’의 높임말이 맞다. 하지만 한국어는 공손성의 이유로 2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제한되는 특징을 지닌, 몇 안 되는 언어다. 그래서 공손성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너’든 ‘당신’이든 2인칭 대명사로 대화 상대자를 부르면 안 된다. 학생이 교수님을 ‘당신’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다. 단,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당신’은 공손한 장면에서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 교수님처럼 존댓말을 써야 하는 대상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2인칭 대명사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지 않고, 적절한 호칭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한국어 문법에 맞는다. 대화 상황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교수님을 부르고 싶다면 2인칭 대명사나 교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교수님’이라는 호칭어를 사용해야 한다.

 

 

1) 전 세계 언어의 특징과 구조를 해석한 온/오프라인 데이터베이스(The world atlas of language structures online) 누리집: https://wals.info/chapter/45

 

 

글_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