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감사하다와 고맙다, 같은 듯 다른 쓰임새

튼씩이 2022. 8. 29. 07:59

‘감사하다’와 ‘고맙다’라는 말은 남의 도움이나 배려에 기쁨을 느끼거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둘의 뜻이 아주 비슷하여 별다른 구별 없이 사용한다. 그런데 종종 ‘감사하다’와 ‘고맙다’를 두고 엉뚱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열정적인 우리말 지킴이 가운데 간혹 한자어를 배척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한자어 때문에 고유어가 위축되었다고 여기기에 ‘감사하다’를 지양하고 ‘고맙다’를 열심히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자의 유입은 우리말을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풍부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후술하겠지만 ‘고맙다’와 ‘감사하다’의 쓰임이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감사’는 일본어에서 왔다는 잘못된 통설이 ‘감사하다’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일본어 ‘感謝’는 우리말 감사와 뜻도 같고 같은 한자를 쓴다. 하지만 이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한자어이다.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태조실록’에서 ‘순종실록’에 이르기까지 ‘感謝’가 빈도 높게 나타날 뿐 아니라 ‘송서’와 같은 중국 고문헌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감사’의 일본어 기원설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뜻은 비슷하지만 쓰임이 다르다. ‘감사하다’는 동사와 형용사로 쓰이지만 ‘고맙다’는 형용사로만 쓰인다.

 

㉮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할/고마울 줄을 모른다.
㉯ 내 덕에 일이 잘되었으니 나한테 감사해라/고마워라.
㉰ 그동안 베풀어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깊이 감사하고/고맙고 있습니다.
㉱ 제 강연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 ㉯, ㉰는 ‘감사하다’가 동사로 쓰인 것으로 ‘고맙다’로 대체될 수 없는 경우이고, ㉱는 형용사로 쓰인 것으로 ‘감사하다’와 ‘고맙다’가 모두 가능한 경우이다. ‘고맙다’가 동사로 바뀔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어하다’가 붙어 ‘고마워하다’로 바뀌면 가능하다. ㉮와 ㉯의 경우 ‘부모님의 은혜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 ‘나한테 고마워해라’와 같이 쓸 수 있다. 하지만 ㉰의 경우는 ‘고마워하다’로 대신하면 부자연스럽다. 문장의 주어가 일인칭인 경우 ‘형용사 어근+-어하다’는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서 보듯 ‘감사하다’가 형용사로 쓰일 때에는 ‘고맙다’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용사 ‘감사하다’에는 ‘고맙다’와 달리 제약이 따른다.

 

㉲ 도와줘서 고마워/감사해.
㉳ 네 뜻은 고맙지만/감사하지만 사양할게.
㉴ 그는 우리에게 참 고마운/감사한 분이다.

 

㉲, ㉳와 같이 ‘감사하다’는 해라체나 해체 등을 쓸 수 있는 손아랫사람이나 동년배를 대상으로는 사용하기 어렵다.(근래에 ‘감사하다’를 ㉲, ㉳에서와 같이 사용하는 경향이 조금씩 늘고 있기는 하다.) 반면, 대상이 손윗사람이면 ‘감사하다’를 사용하여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뜻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와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의 경우처럼 ‘어간+-ㄴ(관형사형 어미)+대상’의 형식을 띨 때 ‘고맙다’는 자연스럽지만 ‘감사하다’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예컨대 ‘고마운 분/고마운 이웃/고마운 친구/고마운 선생님’은 자연스럽지만 ‘감사한 분/감사한 이웃/감사한 친구/감사한 선생님’은 부자연스럽다. 이런 현상은 ‘고맙다’의 기원과 관계있는 것 같다. 본래 ‘고맙다’는 옛말 ‘고마하다’에 형용사를 만드는 접사 ‘-ㅂ-’이 결합하여 생긴 말이다. ‘고마하다’는 ‘존경하다, 삼가 높이 여기다’를 뜻하므로 ‘고맙다’는 ‘존경스럽다’, ‘삼가 높이 여길 만하다’의 뜻을 기원적으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고마운 분’은 ‘존경스러운 분, 삼가 높이 여길 만한 분’이라는 의미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살아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고마워 눈물이 났다.
㉶ 하느님께 감사하라/고마워하라.

 

한편, 대상이 삶 또는 주어진 현실 같은 추상적 개념이거나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일 때에는 주로 ‘감사하다’가 쓰인다.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고유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둘 다 활발하게 쓰이는 소중한 우리말이다. ‘목숨’과 ‘생명’ 중 어느 하나만 써야 할 이유가 없듯이, ‘감사하다’를 배제하고 ‘고맙다’만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글: 강은혜

 

※ 참고 자료

안상순, 『우리말 어감 사전』, 도서출판 유유,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