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이틀 앞으로 다가온 2019학년도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앞두고 수험생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수험생들은 부족한 학습량을 채우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이기도 한다. 한때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말이 수험생들에게 진리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당오락’은 하루 네 시간만 잠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 입학에 성공하고, 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면 대학 입학에 실패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당오락’은 수험생들의 불안에 기댄 속설일 뿐, 사실이 아니다. 많은 수험생들이 공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커피나 각성제들을 먹으며 잠과의 전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무리하게 잠을 줄이는 것이 학습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잠이 부족하면 피로가 누적되어 집중력과 사고력이 떨어진다. 집중력과 사고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학습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사람의 뇌가 잠자는 시간 동안 단기 기억1)을 장기 기억2)으로 전환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학습 효과 향상을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습 효율성을 높이려면 최소 6시간은 자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잠은 몸에 피로가 누적되는 것을 막고, 뇌에 지식을 축적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피로가 ‘누적’된다고는 하지만 ‘축적’된다고는 하지 않는다. 반대로 지식은 ‘축적’된다고 하지만, ‘누적’된다고는 하지 않는다. ‘누적’과 ‘축적’은 모두 쌓는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일까? 얼핏 보면 ‘누적’과 ‘축적’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쓰임을 보면 매우 다르다. 먼저 ‘누적’은 아래와 같이 쓰인다.
시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한계에 다다랐다.
장기 공황으로 외채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
김 선배는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휴가를 떠났다.
위의 예문에서 ‘불만’, ‘외채’, ‘피로’는 어쩔 수 없이 쌓인 것들이다. ‘누적’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와 함께 쓰인다. 반면 ‘축적’은 노력을 통해 의도적으로 쌓은 것들과 함께 쓰인다. 그래서 ‘축적’은 ‘자본’, ‘경험’, ‘경험’ 등과 함께 많이 사용된다. ‘축적’은 아래의 예문과 같이 쓰인다.
자본가들은 많은 부를 축적해 나갔다.
그 기업은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그 부서의 책임자가 되려면 현장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피로는 어쩔 수 없이 ‘쌓이는 것’이기에 ‘누적’되고, 지식은 열심히 공부해서 의도적으로 ‘쌓는 것’이기에 ‘축적’된다.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 수학 능력 시험에서 모든 수험생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1) 경험한 내용을 짧은 시간 동안만 의식 속에 유지하는 일, 또는 그런 정신 기능이나 작용
2) 경험한 것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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