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한글문화연대

키움터·누리아리…조금만 고민하면 이렇게 예쁜 우리말 나와요

튼씩이 2023. 5. 3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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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터·누리아리…조금만 고민하면 이렇게 예쁜 우리말 나와요 - 경남도민일보

우리말을 쉽게 쓰는 일은 어찌 보면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생각과 관련돼 있습니다. 글이 곧 생각이기 때문이죠. 생각하는 과정이 반듯해지면 글이 깔끔해집니다. 쉽고 예쁘게 쓰겠다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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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쉽게 쓰는 일은 어찌 보면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생각과 관련돼 있습니다. 글이 곧 생각이기 때문이죠. 생각하는 과정이 반듯해지면 글이 깔끔해집니다. 쉽고 예쁘게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보면 자연스럽게 적당하고 쉬운 우리말 단어를 더 찾게 될 겁니다.

 

솔직하게 매일 글을 쓰고 있는 우리 기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혹은 편리하기에 습관처럼 굳어버린 단어나 표현을 씁니다. 취재 자료에 나오는 외국어나 한자도 그대로 쓰기 일쑤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입말과 글말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옛날에는 글말 자체가 주는 권위 같은 게 있어 확실하게 입말과 구분이 되게 썼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요즘에는 최대한 입말에 가깝게 쓰는 게 더 좋습니다. 지금 글말이 지닌 권위는 일상보다 공공 언어에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공공 언어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올해는 공공 언어 중에서도 문화, 체육, 관광 등 공공 문화 영역을 주목하려 합니다. 대중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분야이기에 오히려 우리말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도자료 절반 이상 외국어 사용 = 그래도 현황은 한 번 살펴봐야겠죠. 한글문화연대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는 '쉬운 우리말을 쓰자' 누리집(plainkorean.kr)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광역자치단체에서 쓰는 보도자료 우리말 쓰기 통계를 월별로 알 수 있는데요. 경남도가 3월에 외국어를 쓴 보도자료 비율을 보면 54.9%입니다. 2월에는 63.6%, 1월은 51.8%입니다. 경남도가 내는 보도자료 중 절반 이상에 외국어가 쓰였다는 뜻입니다. 

 

경상남도 외국어 사용한 보도자료 수(3월). /쉬운우리말쓰기 누리집 갈무리

 

경남도가 다른 광역자치단체보다 더한 건 아닙니다. 평균 수준이긴 합니다만, 경남도에서 내는 보도자료가 다른 시도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서 상대적으로 외국어가 들어간 보도자료 양도 많습니다. 누리집에는 광역자치단체에서 많이 쓰는 외국어 낱말도 소개했는데요. 컨설팅, 글로벌, 인프라, 엑스포, 스타트업, 프로젝트, 인센티브, 네트워크, 클러스터, 포럼 순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전 세계 상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빠르고 광범위하기에 미처 우리말로 소화해 내지 못한 개념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혹시 습관적으로 이런 낱말들을 쓰고 있지 않나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실제 사례를 들여다봅시다. 지난 17일 경상남도 누리집에 올라온 도정뉴스 중 다음 내용이 있어요.

 

"경상남도는 20일 양산시 국민체육센터 야외무대에서 '청년 거리문화 페스티벌' 예선 1차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청년 거리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는 '청년 거리문화 페스티벌'은 'Busker To Stage'라는 슬로건으로 경남청년 예술가들의 프로 K-POP 무대로 가는 여정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문화 행사에다 청년을 대상으로 해서인지, 영어 단어가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영어가 그대로 들어간 공공 기관 행사 이름. /포스터 갈무리
 
영어가 그대로 들어간 공공 기관 행사 이름. /포스터 갈무리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자료도 하나 볼까요. 지난해 12월 보도자료입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원장 김영덕)은 실무 투입 가능한 XR 실감콘텐츠 인재 양성을 위해 '2023 XR 실감콘텐츠 융합아카데미' 교육을 1월 9일부터 20일까지 운영하였다."

 

기술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낯선 우리말이 아닐까 싶어요.

 

시군 보도자료에서도 몇 가지 찾아봤습니다. 창원시에서 하는 '디지털 성범죄 Stop! Clean 창원!' 캠페인 보도자료가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알고, 취지도 이해합니다. 구호로 외치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조금 더 우리말로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김해시 보도자료 중 최근에 나온 김해다어울림생활문화센터 '다-같이 줍깅' 행사.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인 '플로깅(plogging)'이란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쓰레기를 '줍다'와 '조깅'을 합해 '줍깅'이란 용어로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말을 잘 활용했고, 플로깅이란 외국어 중 절반을 우리말로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전히 조깅이란 말에 묶여 있는 게 조금 아쉽긴 합니다.

 

◇우리말로 잘 만든 것들 = 이런 건 괜찮네, 싶은 보도자료도 있습니다.

 

먼저 경남도가 24일 낸 '경남도, 도청 정원에 이야기를 더하다'인데요. 경남도청 정원을 새로 꾸민다는 내용입니다. 첫 문장에 '힐링 공간'이라는 오점(?)이 있지만 이야기를 더하다, 미래를 더하다, 꽃을 더하다, 편안함을 더하다, 의미를 더하다 식으로 누가 봐도 알기 쉽게 돼 있습니다.

이름 짓기로 보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만든 '찾아가는 경남 문화누리'도 우리말과 사업 취지를 잘 결합했습니다. 진흥원에서 창원국가산업단지 안에 운영하는 '문화대장간 풀무'도 철기 문화를 꽃피운 가야 역사와 지역 문화에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의미까지 잘 담아냈습니다.

우리말로 지은 자치단체 행사사업명. /김해시 보도자료 갈무리
 
우리말로 지은 자치단체 행사사업명. /창원시 블로그 갈무리

 

창원시 산하 기관 중 우리아이 함께 키움터(여성회관 창원관), 공동육아나눔터(여성회관 마산관) 역시 취지를 잘 살려 지은 이름이고요. 이들 기관에서 하는 활동을 '모두가족품앗이'라고 하는데 가족이 모두 힘든 일을 서로 거든다는 뜻이 다 담겨 취지에 마땅한 이름입니다.

 

김해문화재단이 어린이날을 맞아 진행한 '누리아리 어린이축제'도 예쁜 이름입니다. 누리는 세상이란 뜻이고, 아리에는 사랑하는 임이란 뜻이 담겼거든요. 오래된 우리말을 합성해 잘 활용한 사례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고민하면 의미도 있고, 어감도 예쁜 우리말 행사·사업명이 나온다니까요!

 

 

/이서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