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한글문화연대

오마카세와 페어링은 '주방특선'과 '맛조합'으로

튼씩이 2023. 9. 20. 11:35

“최근 커피나 차와 같은 음료도 오마카세 형식으로 내는 것이 트렌드다. 티 카페를 방문하면 차를 우리는 퍼포먼스도 감상할 수 있고, 전문가가 차를 우리면서 하나 하나 큐레이팅을 해주고 차와 페어링하기 좋은 음식을 추천해준다.”

2022년에 발간된 <여성조선>의 기사 한 대목이다. 보다시피 웬만한 명사는 모두 외국어로 되어있다. 그동안 패션 용어가 외국어로 범벅되는 추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지금은 식문화마저 그런 모양새를 보인다. 외국어를 쓰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강박마저 느껴진다랄까. 그런 의미로 위 문장에서도 등장한 여러 외국어 중 최근 새말 모임이 다듬어 낸 ‘오마카세’와 ‘페어링’을 살펴보자.

‘오마카세(omaka[御任]se)’란 주방장이 만드는 특선 일본 요리를 일컫는 일본어로, 주방장이 엄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여러 가지 요리를 하나씩 손님에게 내는 상차림 형식을 가리킨다. 2002년 한 일본 음식점의 한국 진출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런데 일식에서만 쓰이던 이 말이 <여성조선>의 기사에서 보았듯 다른 음식이나 음료에도 마구 사용되고 있다. 한우 오마카세, 디저트 오마카세, 커피 오마카세, 티(Tea·차) 오마카세 등등. 심지어 ‘이모카세’라는 말도 생겨났다. 음식점의 나이가 지긋한 여성 주인 혹은 주방장을 친근하게 부르는 우리말 ‘이모’에 ‘오마카세’를 결합한 잡종 언어다.

음식에서만이 아니다. ‘네일(손톱 관리) 오마카세’, ‘꽃 오마카세’, ‘헤어 스타일링 오마카세’ 마저 등장했다고 한다. ‘오마카세’에 “사물의 판단이나 처리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말”이라는 뜻이 있다니, 의미만 따지자면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말로 오마카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미 언론에서는 ‘맡김 차림’, ‘주방 특선’, ‘맡김 요리’ 등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새말 모임은 ‘맡김 차림’에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기고 새말 후보로 올렸다. 기왕 새말로 다듬을 바에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싶었으나, 여론조사에서 선택된 새말은 ‘주방 특선’이었다. 매체에서 가장 많이 쓴 말이라 대중에게 친숙하다는 점이 큰 점수를 얻은 듯하다.

‘주방 특선’에 손님이 만족하려면 좋은 재료와 요리 솜씨도 중요하겠지만, 맛의 조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바로 살펴볼 두 번째 외국어, ‘페어링(pairing)’에 대한 이야기다. ‘페어링’은 음식 간 어울리는 짝을 맞추는 것, 혹은 전자기기 등을 서로 연결하는 것을 뜻한다.

“화이트 와인에는 생선류, 레드 와인에는 육류를 곁들여 먹는 것처럼 페어링은 주로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선정할 때 사용되는 용어였다”(<여성신문> 2022년 8월)가 전자의 예라면, “무선 충전과 모바일 연결성을 높인 엔에프시 페어링,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됐다”(<매일경제> 2023년 2월)는 후자의 예다.

식문화에서 ‘페어링’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2005년 8월 <이데일리>의 한 커피 전문점 행사를 알리는 기사에서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사용이 잦아지고 있어 역시 서둘러 우리말을 정착시켜야 할 용어다. 이번 새말 모임에서 ‘맛조합’, ‘맞조합’, ‘꿀조합’으로 세 후보를 다듬어 냈다.

이 중 ‘맛조합’은 “‘전참시’ 홍현희, 팬케이크에 김치 싸 먹는 파격 맛조합”(<한국경제> 2019년 12월) “돔베고기와 멜조림을 함께 싸서 먹어본 그(백종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적인 맛조합에 눈물을 훔친다”(<매일경제> 2021년 4월) 등의 기사에서 보이듯 기존에도 적잖이 사용되어 온 익숙한 표현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역시 ‘맛조합’이 언중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고, 그 결과 새말로 선정되었다.

다만, ‘페어링’이 음식이나 음료에 쓰일 때는 ‘맛조합’이 맞춤이지만, 전자기기 관련 용어로는 어색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새말 후보의 하나로 떠올랐던 ‘맞조합’으로 사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그러다 요즘 음식점이 아닌데도 무엇이든 잘하는 곳을 일컬어 ‘맛집’이라고 하는데, 확장해서 전자기기에서도 ‘맛조합’을 써볼 수 있으려나 상상도 해본다. 두 말은 발음이 비슷하니.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