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잡고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는다(涕泗被面). 옛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라는 글은 영조임금이 어머니 숙빈 최씨 무덤의 돌비석에 쓴 “숙빈최씨소령묘갈 (淑嬪崔氏昭寧墓碣)” 내용입니다. 영조임금은 이렇게 묘갈문을 직접 썼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한 효성이 지극한 임금으로도 알려졌습니다.

▲ 무수리 출신 어머니를 그리며 영조임금이 드나들던 소령원
“숙빈(淑嬪) 최씨(崔氏)에게 화경(和敬)이라고 추시(追諡)하고, 묘(廟)는 궁(宮), 묘(墓)는 원(園)이라 하였다.” 이는 《영조실록》 79권, 영조 29년(1753년) 6월 25일 기록입니다. 1724년 병약하던 경종이 후사 없이 33살에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조선 제21대 임금이 된 영조는 어머니 최 씨가 천한 무수리 출신으로 품계가 낮아 위패를 모실 수 없게 되자 무덤 지위를 소령원(사적)으로 높였습니다.
당시 무수리는 궁중 하인 가운데서도 직급이 가장 낮아서 흔히 ‘궁녀의 하인’으로 불렸지요. 숙빈 최씨(1670년~1718년)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친어머니로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태어나 7살에 궁에 들어가 궁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여 숙종의 승은을 입어 아들 영조를 낳음으로 하여 일약 무수리에서 내명부 최고의 빈에 오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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