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제5254호) 왜놈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한용운

튼씩이 2026. 6. 30. 17:39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은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자택 심우장(尋牛莊)에서 세상을 떴습니다. 올해는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낸 지 100돌을 맞은 해여서 의미가 더욱 큽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왜놈이 통치하는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라면서 평생을 호적 없이 지냈으며 "일본놈의 백성이 되기는 죽어도 싫다. 왜놈의 학교에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라면서 집에서 손수 어린 딸을 공부시켰습니다.

 

▲ 한용운 선생(1879.8.29.∼1944.6.29.), 독립훈장 대한민국장(1962), 독립기념관 제공

 

선생은 또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성북동에 집을 남향으로 짓게 되면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게 된다며 이것이 싫어 북향집인 심우장(尋牛莊)을 지어 1933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습니다. '심우'는 불교 수행에서 본성을 깨닫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심우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지요. 서울시 기념물이었던 심우장은 2019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됐습니다.

 

만해에 관한 일화는 참으로 많은데 그를 회유하려고 조선총독부가 성북동 일대 20만 평의 나라 숲을 넘겨주겠다는 한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하고, 최린 등과 함께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선생은 감옥에서 일부 민족대표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자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라며 똥통을 뒤엎기도 했으며, 그토록 가까웠던 최린, 최남선, 이광수 등이 나중에 변절하자 ‘친일파’라며 상종조차 하지 않은 선생은 3·1만세운동 선언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변절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 만해 한용운이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심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