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마롱이 무슨 맛이야?“
편의점에서 빵을 고르던 중, 뒤에서 들려온 말입니다. 매대에는 ‘연세우유 마롱 생크림빵’이 있었습니다. 가을을 맞아 새롭게 나온 것이죠. 얼핏 보면 전에 없던 새로운 맛 같지만, 사실 이 빵은 ‘밤 크림빵’입니다. ‘마롱(marron)’이 불어로 ‘밤’이라는 뜻이거든요. 연세대 크림빵만이 아니라 다른 신상품에서도 밤맛은 ‘마롱 크림’이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스타벅스에서도 가을 한정으로 ‘마롱 헤이즐넛 라떼’를 냈고, 해태에서도 ‘마롱 크림맛 홈런볼’을 출시했습니다. ‘마롱’이라는 표현이 정착하면서 ‘밤맛’은 아예 죽은 말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볶음밥은 ‘필라프’로, 감자튀김은 ‘후렌치 후라이’로
이미 우리말 표현이 있는 단어를 외국어로 표기하는 일은 음식점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양식당에 가면 볶음밥을 ‘필라프(필래프, pilaf)’로 표기하고 피자 가게에 가면 감자가 들어가는 피자를 ‘포테이토 피자(potato pizza)’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국어 표기는 단순히 일부 가게만의 일은 아닙니다. 대기업, 그 가운데 특히 외국계 기업은 외국어 표기의 정도가 더 심합니다. 스타벅스는 복잡한 외국어 메뉴가 주를 이룹니다. 단적인 예로 ‘마롱 헤이즐넛 라떼’와 함께 출시된 음료가 ‘미니 블루베리 요거트 프라푸치노’와 ‘블랙 글레이즈드 라떼’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맥도날드는 거의 모든 메뉴에 외래어나 외국어 표현이 들어갑니다. ‘빅맥’이나 ‘맥모닝’은 상품의 고유 이름이니 그렇다 해도 감자튀김을 ‘후렌치 후라이’라고 쓰는 것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미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 단어가 있는데도 이러한 외국어 표현을 쓰면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특히 폭넓은 소비자에게 팔리는 식품의 이름을 어렵게 지으면 정보 격차가 더 벌어져, 결국 모든 소비자가 동등하게 상품의 정보를 얻고 구매하지 못하게 됩니다. 연령대를 예로 들면, 복잡한 이름 때문에 중장년층이 식당에서 혼자 주문하기 힘들어하는 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젊은 세대도 예외는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편의점에서 ‘마롱’이 무슨 맛인지 물어본 사람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포장지에 쓰인 글자가 ‘마롱 생크림빵’이 아닌 ‘밤 크림빵’이었다면 세대를 막론하고 빵의 맛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말을 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글문화연대와 국립국어원 등 여러 단체에서 외국어 표현을 대체하는 우리말 표현을 만들어 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있는 우리말을 외국어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상품의 이름은 널리 보도되고, 사람들의 입에도 자주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레 소비자의 언어 속에 정착합니다. 일반 대중의 언어에 영향을 주는 만큼 기업에서도 상품의 이름을 지을 때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롱 크림맛’이 무슨 맛인지 찾아보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밤 크림맛’을 구매할지 말지 고민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매출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