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재미나는 구경을 했다. 돼지 다섯 마리를 새로 만든 우리에 넣고 돼지가 똥오줌과 잠자리를 가릴지 못 가릴지를 알아보려고, 다섯 사람이 한 마리씩 맡아서 밤을 새우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놈이 구석에다 오줌을 누었다. 그러자 다른 놈들도 모두 똥이나 오줌을 그 구석에만 가서 잘 가려 누었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들은 돼지가 오줌이나 똥을 눌 때마다 한결같이 “쌌습니다! 쌌습니다!” 했다. 박문희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들과 살면서 겪은 그대로였다.
‘똥오줌을 눈다’와 ‘똥오줌을 싼다’를 가려 쓰지 않고 그냥 ‘싼다’로 써 버립니다. ‘똥오줌을 눈다’는 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변기에 눈 건지 바지에 싼 건지를 가려 쓰지 않으니 가려듣지 못합니다. 이러니 생활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분명히 ‘똥을 눈다, 똥을 싼다’는 말을 가려 써 왔습니다.
- 박문희, 《우리말 우리얼》 46호
▲ 잠자다 요에 지도를 그리는 것은 오줌을 싸는 것이다.(뉴스툰-왼쪽), 오줌싸개 치료법이 등장한 기사(동아일보 1932년 9월 28일)
‘누다’와 ‘싸다’는 다스림으로 가려진다. ‘누다’는 똥이든 오줌이든 스스로 잘 다스려서 내보내는 것이고, ‘싸다’는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그냥 내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려서 철이 들지 않은 적에는 똥이든 오줌이든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나오는 그대로 그냥 ‘싸고’ 만다. 그러나 자라서 철이 들고 나면 스스로 다스려 때와 곳을 가려서 ‘눈다’. 철이 든 다음에도 몸에 탈이 나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스스로 다스려 누지 못하는 수가 생기고, 그러면 쌀 수밖에 없다.
한편 짐승의 삶은 사람의 그것과 달라서, 저들은 나름대로 잘 다스려 누지만 사람의 눈에는 싸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짐승이 누고 싸는 것을 사람이 제대로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돼지들이 스스로 다스려 또렷이 곳을 가려서 누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 지켜본 사람들이 모두 ‘누다’와 ‘싸다’를 가려 쓰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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