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47권, 세종 12년(1430) 3월 5일에 보면 "정부ㆍ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직 벼슬아치들과 각도의 벼슬아치들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세종임금이 토지에 관한 세금제도 곧 공법(貢法)을 시행하기 전 백성들에게 의견을 묻는 지금으로 말하면 국민투표를 1430년 3월 5일부터 무려 5달 동안 시행한 것입니다.
이에 호조가 공법 시행에 관한 투표의 결과를 보고했는데 17만 여명의 백성이 참여해 9만 8천여 명이 찬성하고, 7만 4천여 명이 반대했으며, 전라도와 경상도는 찬성이 많았고, 평안도나 함경도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때 인구를 생각할 때 17만 명의 투표 참여는 노비나 여성을 빼고 거의 모든 백성이 참여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 세종, 공법을 시행하기 전 백성들에게 뜻을 묻다(그림 이무성 작가)
조선시대 모든 정책은 백성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임금의 뜻대로 행해진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을 끔찍이 사랑했던 세종임금은 이렇게 벼슬아치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 뜻을 묻고 그 결과에 따라 공법도 시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전화나 인터넷으로 쉽게 여론조사를 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불가능했던 당시로서는 백성들의 뜻을 묻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일종의 국민투표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공법을 시행한 세종임금의 태도는 지금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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