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전지(傳旨)에, ‘무뢰배(無賴輩)가 항상 법정에 와 품을 받고 대신 송사(訟事)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람을 인도하여 송사를 일으키게 하며, 법률 조문을 마음대로 해석하여 법을 남용해서 옳고 그름을 변경하고 어지럽게 하는데, 시속(時俗)에서 외지부(外知部)라고 하니, 쟁송(爭訟)의 번거로움이 진실로 이러한 무리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므로, 마땅히 엄하게 징계하여 간사하고 거짓됨을 없애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종실록》 95권, 성종 9년(1478년) 8월 15일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지금 일반 국민은 법에 호소할 일이 생기면 변호사를 찾습니다. 그것은 글을 안다 하더라도 갖가지 법과 시행령 그리고 판례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조선시대 글을 몰랐던 일반 백성은 도움을 받지 않으면 소장을 낼 수도 없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소장을 썼다 해도 문지기인 사령이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는 관아에 들어가 소송을 하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이런 까닭에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소장을 잘 쓰고, 관청에 쉽게 드나들면서, 형리와도 잘 알뿐더러 말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지요.
▲ 1905년 전남 무안군의 박희봉이 전남 관찰부에 제출한 소장, 전북대 박물관 소장. (출처 : 《대한제국기 고문서》(국립전주박물관, 2003) 146쪽)
조선시대에는 이럴 때 품삯을 받고 의뢰인의 송사를 자문해 주는 지금의 변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외지부(外知部)’라고 불렀습니다. 다만 그들은 무지한 백성들이 억지로 소송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법조문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시비를 일으킴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범법자들이 많았기에 그들을 변방으로 쫓아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 전해지는 조선 후기의 소송문서에는 글자나 법률 지식이 없는 백성이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 소장이 종종 발견되기에 대신 송사를 대행해 주는 외지부가 여전히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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