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1,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차다’와 ‘춥다’

튼씩이 2024. 9. 27. 21:26

우리처럼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의 제맛을 알뜰하게 맛보며 살아가는 겨레는 땅덩이 위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위도에 자리 잡고 있어도 우리처럼 북쪽이 뭍으로 이어져 북극까지 열려 있고, 남쪽이 물로 이어져 적도까지 터져 있는 자리가 별로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혜가 가없는 자연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는 따스한 봄, 따가운 여름, 서늘한 가을, 차가운 겨울을 겪으면서 춥고 더운 느낌을 갖가지 낱말로 드러내며 살아간다. 말하자면, 바깥세상이 그지없이 베푸는 풍성한 잔치에서 우리는 갖가지 낱말로 알뜰하게 맞장구를 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잔치에 사람이 맞장구치는 낱말에서 가장 첫손 꼽을 것이 ‘차다’와 ‘춥다’, ‘뜨겁다’와 ‘덥다’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들 네 낱말이 두 벼리(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어 자연이 베푸는 한 해 동안의 잔치에 알뜰한 맞장구를 치면서 살아간다. ‘차다’와 ‘춥다’는 한겨울 동지를 꼭짓점으로 하는 벼리가 되고, ‘뜨겁다’와 ‘덥다’는 한여름 하지를 꼭짓점으로 하는 벼리가 된다.

 

그래서 ‘차다’와 ‘춥다’는 ‘실미지근하다, 사느랗다, 서느렇다, 싸느랗다, 써느렇다, 사늘하다, 서늘하다, 싸늘하다, 써늘하다, 쌀쌀하다, 차갑다, 차끈하다, 차디차다, 싱겅싱겅하다, 시원하다, 선선하다, 살랑하다, 설렁하다, 쌀랑하다, 썰렁하다, 어슬어슬하다’ 같은 낱말을 거느린다.

 

‘뜨겁다’와 ‘덥다’는 ‘맹근하다, 밍근하다, 매작지근하다, 매지근하다, 미지근하다, 뜨뜻미지근하다, 뜨뜻하다, 따끈하다, 따끈따끈하다, 따갑다, 뜨끈하다, 뜨끈뜨끈하다, 다스하다, 드스하다, 다습다, 드습다, 따사롭다, 따스하다, 뜨스하다, 따습다, 뜨습다, 따뜻하다, 웅신하다, 훗훗하다, 후덥지근하다, 무덥다’ 같은 낱말을 거느린다.

 

가을이 늦어지면서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바람 끝이 쌀쌀한 초겨울로 들어서는 즈음, 아침 일찍 엷은 얼음을 깨고 개울물에 손이라도 넣어 보면 “아이 차다!” 하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이럴 때 ‘차다’는 내 손에서 빚어지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가늠자는 손이 아니라 개울물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아이 차다!” 하는 말은 “아이고 개울물이 차다!” 하는 말을 줄인 셈이다.

 

▲ "차다"는 개울물이 차다는 것이고, "춥다"는 내 몸이 춥다는 것이다.(그림 이무성 작가)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개울물에 손뿐 아니라 얼굴까지 씻어 보면 온몸이 오싹하면서 소름이 끼치고 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그러면 바깥에 서 있는 것조차 싫어서 “아이 춥다!” 하며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구들목을 찾는다. 이럴 때 ‘춥다’는 개울물에서 말미암은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가늠자는 개울물이 아니라 내 몸 안에 놓여 있다. “아이 춥다!” 하는 소리는 “아이고 내 몸이 춥다!” 하는 말을 줄인 셈이다.

 

이처럼 ‘차다’와 ‘춥다’는 느낌의 가늠자가 놓인 자리에 따라 가려 쓰이는 낱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느낌이 일어나는 자리에 따라 가려 쓰이는 낱말이기도 하다. ‘차다’는 느낌이 일어나는 자리가 ‘몸’이고, ‘춥다’는 느낌이 일어나는 자리가 ‘마음’이라는 데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 같이 바깥세상의 사정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느낌이지만, ‘차다’는 몸에서 빚어지는 느낌이고, ‘춥다’는 마음에서 빚어지는 느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바깥세상이 먼저 몸에 부딪혀 ‘차다’는 느낌을 일으킨 다음, 그것이 마음으로 들어가 ‘춥다’는 느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이런 원리는 또 하나의 벼리인 ‘뜨겁다’와 ‘덥다’도 마찬가지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푸나무(풀과 나무) 잎새는 자랄 대로 자라고 수풀 속에서는 매미들이 귀청 찢는 소리로 노래잔치를 벌일 적에 뙤약볕으로 나서면 “어이구 뜨거워!” 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온다. 이때 ‘뜨겁다’는 소리는 내 몸에서 빚어지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 가늠자가 몸이 아니라 내리쬐는 햇볕에 놓여 있다. “어이구 뜨겁다!” 하는 말이란 실상 “어이구 햇볕이 뜨겁다!” 하는 말을 줄인 것이다.

 

한편, 이맘때에는 뙤약볕에다 몸을 내놓지 않고 그늘진 데 머물어도 온몸에서 땀이 솟아 부채질을 해 대면서 “어이구 덥다!” 소리를 입에 달고 지낸다. 이때 “어이구 덥다!” 소리는 바깥 날씨에서 말미암은 느낌을 드러내는 말이지만, 그 가늠자는 날씨가 아니라 내 몸 안에 놓여 있다. “어이구 덥다!”는 “어이구 내 몸이 덥다!” 하는 말을 줄인 셈이다.

 

이때에도 ‘뜨겁다’와 ‘덥다’는 느낌의 가늠자가 놓인 자리에 따라, 또는 느낌이 일어나는 자리에 따라 가려 쓰이는 낱말이다. ‘뜨겁다’는 느낌이 일어나는 자리가 ‘몸’이고, ‘덥다’는 느낌이 일어나는 자리가 ‘마음’이라는 데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 같이 바깥세상의 사정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느낌이지만, ‘뜨겁다’는 몸에서 빚어지는 느낌이고, ‘덥다’는 마음에서 빚어지는 느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바깥세상이 먼저 몸에 부딪혀 ‘뜨겁다’는 느낌을 일으킨 다음, 그것이 마음으로 들어가 ‘덥다’는 느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