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서민(단국대 의대교수)이야기

박사모는 틀림이다

튼씩이 2017. 3. 3. 09:40

“박 대통령 탄핵은 검찰, 국회, 언론, 종북 세력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곽일천 교장이 지난 7일 종업식에서 학생들을 앞에 놓고 했던 말이다. 정권의 하수인이라 불리는 검찰, 박 대통령의 충복인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국회, 보수의 지분이 많았던 언론이 그간 배척해 마지않던 종북세력과 힘을 합쳐 음모를 꾸몄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최순실의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다음 말을 들으면 진짜 음모를 꾸미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80%의 국민이 탄핵을 지지하는 이 순간에도 저들은 뒤집기 한판을 꿈꾸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중이니까. 모든 것은 다 고영태가 벌인 일이라느니 트럼프가 탄핵을 반대했다느니 하는 내용의 가짜뉴스는 그 결정판이다. 엊그제는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주자들을 모아놓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심판결정에 승복할 것을 약속하는 합동서약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걸 보면 드디어 저들이 뒤집기 문턱에 다다른 것 같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게 생명이다.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그 의견을 지지하는 이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 다수의 힘으로 무시해서는 안되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다면 15%에 불과한 박사모의 저 난리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의견의 다름에도 정도가 있으며, 박사모의 지금 언행은 다름이 아닌, 틀림이다. 소수의견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해서 검은 개를 흰 개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믿어줘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한국 정치가 지금 이 수준밖에 안되는 이유도 박사모의 틀림이 ‘다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죄목은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되도록 많은 의석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선거법 중립 의무를 위반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국민들은 탄핵반대를 외치며 광화문에 모였다(이들을 A라고 하자). 반면 탄핵찬성을 주장하는 측은 태극기를 흔들며 광화문 한쪽을 차지했다(이들을 B라고 하자). 여기서 박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죄목을 바꿔서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상해 보자.

 

1번. 2004년, 노 대통령이 측근인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사익추구를 적극 도왔다는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된다. 그랬다면 A가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노빠’로 불리는 적극적 지지층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A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느낄 줄 안다. 그러니 아무리 노무현을 사랑하더라도 광화문에 나와 탄핵반대를 외치진 않았을 것이다.

 

2번. 2016년, 박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과반, 최대 200석까지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탄핵당한다. 이 경우 A는 광화문에 나가 탄핵반대를 외칠까? 노빠와 박근혜의 관계로 보건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최소한 A는 탄핵찬성을 외치진 않을 것이고, 여론조사에서도 탄핵에 반대표를 던지리라. 왜? 겨우 그 정도 가지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건 다수당의 횡포일 뿐, 결코 민의가 아니니까. 반면 과거 노무현의 죄가 탄핵사유라고 주장하던 B는 지금 그보다 천만배가량 더 큰 죄를 지은 박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고 외치는 중이다.

 

전문용어로 이런 태도를 ‘내로남불’이라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인데, 원래 ‘빠’들은 어느 정도 이런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박사모의 내로남불은 해도 너무한 감이 있다.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마치 정상적인 대통령처럼 보이게 만든 희대의 최악 대통령을 옹호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작년에 열린 촛불집회에서 한 초등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기 나와서 이런 얘기 하려고 초등학교 가서 말하기를 배웠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서 밤에 잠이 안 옵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력을 최순실에게 줬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된 게 자괴감 들고 괴로우면 그만두세요.”

 

그렇다. 논쟁이란 뭔가 좀 애매한 구석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을 “그건 다 조작이다”라고 소리치는 건 한심한 일이다. 명색이 교육자인 교장이 학생들이 다 모인 종업식에서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탄핵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열린 사람인 양 질의응답까지 하는 모습에선 역겨움까지 느껴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아무리 심해도 넘어서면 안되는 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 거리낌도 없고, 죄의식도 없이 쉽게 하는 걸 보면서 한국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난 1월25일, 박 대통령이 정규재 주필과의 인터뷰 도중 한 말이다. 정말이지 아무리 심해도 넘어서면 안되는 도가 있는데, 아무 거리낌도 없고 죄의식도 없이 쉽게 그 도를 넘는 그 세력으로 인해 한국정치의 현주소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박 대통령과 박사모에게 이 말을 다시 돌려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