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7년간 복직투쟁을 해온 KTX 승무원들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이 있었다.
KTX가 처음 출범하던 2004년, 공채를 통해 선발된 280명의 직원들은 당장은 계약직이지만 2년 뒤 정규직이 된다는 철도공사 측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만료에 의한 해고였다. 승무원들은 여기서 물러나는 대신 소송을 제기했다. “철도공사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해고 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도 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1심과 2심은 철도공사가 그간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이 났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뒤이어 열린 파기환송심도 결국 원고패소로 결말이 났다. 이제 승무원들은 정규직 채용은 고사하고 이전에 지급받은 임금 8600여만원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판결은 별반 화제가 되지 못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7년간 이들의 투쟁이 주목을 받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KTX 승무원들의 욕심을 탓했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란 책에는 20대 대학생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을 때 저자는 이 학생을 걱정했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그 학생이 혹시 왕따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건 기우였고, 다른 학생들 모두 이 학생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많은 젊은이들의 꿈인 공사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들어온 이들이 쉽게 차지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도 전혀 이해 안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좀 달리해보자. KTX 승무원들로 인해 ‘비정규직으로 2년간 근무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수많은 젊은이들도 정규직의 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KTX에 대한 사회의, 특히 젊은층의 무관심이 아쉽다. 판결이란 게 법을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긴 해도, 세간의 여론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번 승무원들의 소송에서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민사1부의 판단은, 같은 사안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달랐으니 말이다.
이보다 먼저 있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보자.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사측이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도 문제는 대법원이었다. 2014년 말, 대법원은 해고가 적법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판결이 내려진 데는 우리 사회의 여론도 한몫을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25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이 자살 등으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람들은 기이하리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니까. 오히려 젊은층은 “해고도 마음대로 못하면 회사 망하라는 거냐?” “잘리면 다른 일 하지, 왜 파업하고 앉았느냐?”며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을 조롱했다. 그들의 단견이 아쉬운 이유는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은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않고 직원을 해고해도 상관없게 됐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젊은층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우리 사회를 짓누른 건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다. 이들을 가리켜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하는 말이 만들어지곤 하는데, 안타까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들의 편에 서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들끼리 뭉쳐서 뭔가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정부를 압박하거나, 정규직을 많이 안 뽑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인다든지 하는 일을 지금의 20대가 벌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미약한 개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연대하면 힘이 커진다. 현재 7년째 동결된 대학등록금은 대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이룬 빛나는 성과가 아닌가?
2006년, 프랑스 대학생들은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다. 4년이 지난 2010년에는 노동자들의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서 고교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지금도 토익점수를 몇 점 더 올리기 위해 영어책을 뒤적이고, 짬이 날 때마다 댓글을 단다. “정규직 날로 먹으려 하면 안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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