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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배참]
안녕하세요.
무척 덥네요. 오늘은 애들과 같이 걸어서 일터에 나왔습니다. 저 혼자 걸어오면 20분, 애들과 자전거로 오면 40분이 걸리는데, 오늘 아침에 애들과 같이 걸어보니 1시간이 꼬빡 걸리네요. 하긴 같이 걸어오면서, 붕어가 몇 마리 보이는지, 나팔꽃이 몇 개 피였는지, 살사리꽃 이파리가 몇 개인지를 세는 해찰을 부리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걸리네요. 아까시나무 잎 따서 가위바위보 하면서 겨루기도 하고... ^^*
오늘 아침 7:24, KBS뉴스에서 미국 한 주지사가 애인과 밀월여행을 다녀왔다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밀월여행에서 밀월은 영어 허니문(honeymoon)에서 왔습니다. honey가 꿀이고 moon이 달이잖아요. 그래서 꿀 밀(蜜) 자와 달 월(月) 자를 써서 밀월여행이라고 합니다. 꿀같이 달콤한 결혼 바로 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겠죠. 그러나 밀월여행은 '蜜月여행'이지 '密越여행'이 아닙니다. 곧 달콤한 신혼여행을 뜻하지, 몰래 다녀오는 여행이라는 뜻은 없습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지사가 애인과 몰래 다녀온 여행은 '밀월여행'이 아닙니다.
오늘도 무척 덥겠죠?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짜증이 나기 쉬우니 서로 배려하면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웃는 것은, 웃는 사람도 좋고, 보는 사람도 좋지만, 짜증 내는 것은, 내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좋지 않잖아요. 기쁜 마음으로 즐기며 웃고 살기에도 짧은 날을 찡그리며 살 수 없잖아요. ^^*
우리말에 '배참'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꾸지람을 듣고 그 화풀이를 다른 데다 함."이라는 뜻입니다. 너는 화가 났으면 났지 왜 내게 배참하니?처럼 씁니다. 동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한다나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뜻쯤 되겠네요.
이 '배참'을 배차기, 배창, 배채기라고도 쓰는데 이는 바른말이 아닙니다. 또, 배참하다를 배창내다고도 하는데 이 또한 바른말이 아닙니다.
표준어 규정에 보면, 뜻은 같은데 형태가 다른 낱말이 여럿 있을 때에, 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낱말만을 표준어로 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곧,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는 것이 국어를 풍부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어느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죠. 그래서 배차기, 배창, 배채기는 버리고 '배참'만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면 뿌듯하고, 찡그리는 것보다는 웃는 게 훨씬 좋다고 봅니다.
오늘도 많이 웃읍시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