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조카와 조카딸] [까칠하다와 거칫하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연구소로 돌아와 여기저기 인사다니다 보니 한 주가 다 갔네요. 지난주에 날마다 술을 마셨는데, 제발 이번 주는 술 마실 일이 없기를 빕니다. 사람 만나서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데 왜 꼭 술을 마시면서 혀가 꼬부라져야만 정이 든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말 술이 싫은데... 그러나 막상 술자리에 가면 꼭 한 바퀴를 돌아야 직성이 풀리니... 제 잘못이 더 크죠...
요즘 제 얼굴이 까칠해졌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술을 퍼 마셔대니 얼굴이 좋은 게 오히려 이상하죠.
까칠하다는 낱말을 하시죠? 그림씨(형용사)로 야위거나 메말라 살갗이나 털이 윤기가 없고 조금 거칠다는 뜻입니다. '가칠하다'보다 센 느낌이 드는 낱말입니다. 꺼칠하다나 거칠하다도 같은 뜻입니다. 까칠하다, 꺼칠하다, 가칠하다, 거칠하다 모두 쓰셔도 됩니다.
요즘은 사람의 성격에도 까칠하다는 말을 쓰더군요. 한 낱말의 쓰임이 넓어진다는 면에서는 좋게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까칠하다에 성격에 관한 뜻은 없습니다.
사람의 성격이 좀 거칠 때 쓰는 낱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거칫하다'입니다.
거칫하다에는 까칠하다와 같이 "살갗이나 털 따위가 여위거나 메말라 윤기가 없이 거칠다."는 뜻도 있고, "성미가 거친 듯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잠을 못 잤는지 얼굴이 거칫하다, 저 사람 겉으로 보기에는 거칫한 것 같지만, 사귀어 보면 아주 부드러운 사람이야처럼 쓸 수 있습니다.
요즘 제 얼굴이 까칠합니다. 게다가 때꾼한 저를 보는 아내도 좀 거칫한 것 같습니다. 제발 술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제도 마셨고, 오늘도... 그리고 주말까지 날마다 저녁 약속이 있는데, 어찌 버틸지 걱정입니다. 이놈의 술을 빨리 마셔서 없애버려야 하는데... 쩝...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