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A씨는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며 양해를 구했다.
-B씨도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B씨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원에 있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C씨 역시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C씨는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며 양해를 구했다.
피해를 입은 이가 사기꾼을 고소하려면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피해를 입증할 자료도 챙겨야 하고, 고소장을 접수하려면 경찰서에서 최소한 하루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생의 수업료로 생각하겠다’며 신고를 안해 버린다. 그래도 끝까지 신고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얼핏 생각하기엔 경찰이 사기꾼을 잡으면 다시는 사기를 칠 생각이 없게 강력한 처벌을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냥 벌금만 조금 내면 끝이다. 사기꾼 자신도 놀랄 정도로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 사기를 쳐봤자 신고될 확률이 극히 낮고, 설령 경찰에 잡혀도 벌금만 내면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기를 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이건 다른 사기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이 왜 복마전인지 아는가? 시중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구매자를 유혹해 폐차 직전의 차를 사게 만드는 사기가 판을 치고 있어서다. 중고나라 사기가 그렇듯 중고차 사기범도 그냥 벌금만 좀 내면 바로 풀려난다. 관대한 처벌이 사기공화국을 만든다는 얘기, 현직 검사인 김웅이 쓴 <검사내전>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사기꾼은 어지간해서 죗값을 받지 않는다. 사기꾼이 구속될 확률은 재벌들이 실형을 사는 것만큼 희박하다. 설사 구속되더라도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쉽게 풀려난다…. 이런 천혜의 환경 조성으로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처벌을 받은 사기꾼 10명 중 8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다.(19~20쪽)”
뜻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사기죄의 형량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게 과연 입법부나 국회의원만의 문제인 것일까. 이 나라에선 중고나라와 비교가 안되는, 스케일 큰 사기가 자주 벌어진다. 자신을 높은 자리로 보내주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놓고선 자신의 재산만 불린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자기 측근의 꿈만 이루려고 한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단죄돼야 마땅하다. 국민이 할 수 있는 단죄는 선거를 통해 그를 응징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뒤늦게나마 그들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건 저 중의 한 분이 나라를 완전히 거덜 낸 뒤였지, 그 이전까지 선거에서 제대로 된 심판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왜 그럴까? 우리가 남이 아니라서, 존경하는 분의 딸이어서, 저쪽은 왠지 북한하고 친한 것 같아서 등등의 시답잖은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것만 보면 사기꾼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고 징징댈 일은 아니다.
오늘은 지방선거 날이다. 지방선거의 취지는 지역의 일꾼을 뽑자는 것, 누가 우리 지역을 더 발전시킬지에 대한 판단이 표를 던지는 가장 중요한 선택지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방선거 후보자를 정당에서 공천하는 제도 탓에 지방선거는 각 정당에 대한 심판의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무조건 투표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당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지를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사기공화국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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