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간에 붙어 있는 방을 행랑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적 외가에도 행랑이 있었다. 행랑 옆에는 쇠죽 끓이는 가마솥이 걸린 부뚜막이 있는 부엌이 있고, 그 옆은 외양간이었다. 그 행랑은 드난하는 드난꾼이 아니라 머슴의 거처였는데, 동네 장정들의 마을방이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모여든 사람들은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쩌다가 메밀묵이나 막걸리 내기 화투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방을 아주 좋아했던 나는 외가에 가면 늘 거기 가서 놀다가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가물거리는 등잔불이 비춰주던 그 방 안의 풍경이 그립다. 타박타박 신작로를 밟으며 외가로 가는 밤길, 하늘 가득 걸려 절로 입이 벌어지게 하던 미리내도 함께 떠오른다.
드난은 ‘들고 난다’ 또는 ‘드나든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드난살이는 주로 여자가 하는 것이었는데, 부부가 함께하는 드난살이는 안팎드난이라고 한다. 안팎드난은 집안일과 바깥일을 모두 맡아 하는 드난살이를 뜻하기도 한다. 드난살이와 비슷한 형태로는 더부살이, 남의집살이와 안잠자기가 있다. 그냥 안잠이라고도 하는 안잠자기는 여자가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며 그 집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먹고 자며’라는 조건을 보면 ‘안 잠자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일과는 상관없이 남의 집 곁방을 빌려서 사는 것은 곁방살이나 격간살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서 ‘-살이’는 홀로 설 수 없는 뒷가지인데, 소설가 이문열은 ‘살이’를 하나의 낱말로 썼다. 이문열의 ‘살이’는 생(生)이라는 뜻이다.
가난에 쪼들리며 사는 살림살이를 애옥살이라고 하는데, 애옥살이는 ‘애옥한 살림살이’라는 뜻이고, ‘애옥하다’는 ‘살림이 몹시 구차하다’라는 뜻이다. 억판이나 엉세판은 매우 가난하고 궁한 처지를, 쪽박신세는 구걸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드난 (명) 임시로 남의 집 행랑에 붙어 지내며 그 집의 일을 도와줌. 또는 그런 사람.
쓰임의 예 – 평복만 되시면 소인이 그 댁에 가 몸이 마칠 때까지 드난이라도 하여 드리겠습니다. (이해조의 소설 『고목화』에서)
- 가르쳐 주는 분이 있다면 그 집 드난을 살더라도, 헛간에서 자더라도 해낼 테다! (한무숙의 소설 『만남』에서)
- 창길이는 어려서부터 번화한 큰 집 살림을 드난해 보아서 여러 방면으로 닦달을 많이 했다. (이기영의 소설 『봄』에서)
-이방은 허허 웃고 이방의 아내는 빙글빙글 웃고 심부름하는 계집아이와 드난하는 여편네들까지 입을 막고 웃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애옥살이 – 가난에 쪼들리며 사는 살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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