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무장을 뽑으라면 십중팔구 이순신 장군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가장 큰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일본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3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업적이 더 커 보인다. 우리에게 대국이었던 수나라 군사를 수장시킨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도 업적 면에선 이순신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순신이 최고의 무장이 된 이유는 뭘까? 모함으로 인한 투옥과 백의종군, 12척으로 133척에 달하는 적을 물리친 명량해전, 자기 죽음을 부하에게 알리지 말라 한 마지막 순간까지, 이순신에게는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드라마가 있었다. 김유신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거라곤 자기 잘못을 말한테 뒤집어씌워 목을 벤 게 다이지 않은가?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이순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접촉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이 잘못했다며 서로 삿대질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접촉사고의 경위를 글로 써보면 어떨까. 싸울 때는 몰랐던 자기의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종이 위에 쓰인 사건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글이 주는 ‘자기 객관화의 힘’, 즉 일기를 쓰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이는 자기성찰로 이어진다. 이순신이 고매한 인격을 갖출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일기를 쓴 덕분이란 얘기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전격 사퇴했다. 그로 인해 두 달여 동안 극심한 국론분열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사퇴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때 우리가 믿고 따른 지식인이었던 분이 이렇게 몰락한 이유는 그가 SNS 중독자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에 신음하던 시절, 조국은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SNS 글을 지속해서 써댔다.
- 1명의 피의자 때문에 5천만이 고생이다 : 2016년 11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쳤을 때.
- 이제 민심은 즉시 ‘하야(下野)’를 넘어 ‘하옥(下獄)’을 원하고 있다 : 2016년 12월, 200만이 넘는 인파가 광화문에 모였을 때.
- 검찰은 왜 최순실을 긴급체포하지 않고 귀가시켜 공범들과 말 맞출 시간을 주는가 :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건 당시 해외에 머물던 최순실이 귀국했을 때.
- 피의자 박근혜, 첩첩이 쌓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른다’와 ‘아니다’로 일관했다. 구속영장 청구할 수밖에 없다 : 2017년 3월, 박근혜 재판 때.
잘생긴 서울대 교수가 저리도 멋진 말로 정권을 비판하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조국은 스타 지식인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SNS엔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다. 차분하게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일기와 달리 SNS는 그 속성상 ‘촌철살인’을 지향한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지고 임팩트 있는 글을 쓸지 노력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허세가 끼어들고, ‘내가 머리가 아픈 것은 남보다 열정적이기 때문인가’ 같은 오글거리는 말도 SNS에서는 일상이다. 그러다 보면 실제의 자신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소위 ‘조국사태’에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웠던 것도 조국의 삶이 그가 SNS에서 했던 말과 전혀 다른, 기득권의 관행에 절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국이 과거에 썼던 SNS 글들은 결국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조국이 구린 일은 죄다 아내에게 미루고 자신은 몰랐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가 반기문을 향해 날린 “알았으면 공범이고 몰랐으면 무능이다”를 찾아왔고, 그의 딸과 관련해 불거진 입시비리 의혹엔 “대학 수험생 입시 관리를 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스펙을 만들어 오지, 하며 놀랄 때가 많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못마땅해할 때는 “편집과 망상에 사로잡힌 시민도, 쓰레기 같은 언론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특히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제멋대로의 검증도, 야멸찬 야유와 조롱도 허용된다”를, 온갖 의혹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틸 때는 “도대체 조윤선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 우병우도 민정수석 자리에서 내려와 수사를 받았다”를 가져왔다. 조국 때문에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집회를 할 때는 “1명의 피의자 때문에 5천만이 고생이다”를 찾아왔다.
이런 일이 잦자 사람들은 ‘구(舊)조국’과 ‘신(新)조국’이 다른 사람이라거나, 조국이 자신의 앞날을 예언한 ‘조스트라다무스’였다는 식으로 그를 조롱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와중에도 조국이 SNS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기 아내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동안, 조국은 SNS의 프로필 사진을 ‘서초동 조국수호 집회’로 바꿨다가 50분 만에 내리고 잇따라 서로 다른 자신의 사진으로 수차례 변경했다.
수만개의 글을 SNS에 쓰는 대신 그가 그 열정으로 ‘조국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허물을 잘 알았을 테니 법무장관은 꿈도 꾸지 않았겠고, 설령 후보자로 지명됐다 해도 바로 물러났을 것이며, 사퇴 할 때 자신이 검찰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단 말로 사람들을 실소하게 만들진 않았으리라. 그의 사퇴에 대해 2017년 탄핵 당시 박근혜를 가리킨 구조국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련다.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심도 사라지게 만드는 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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