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이라는 말에는 여러 관점이 들어 있어서 그 사용에서 혼동이 많이 발생한다. 문법은 말과 글의 구성 및 운용상의 규칙을 말한다.
‘문법’의 ‘문(文)’이 ‘글’이라는 뜻이므로 ‘문법’은 글(문자 언어)에 적용되는 것이고 ‘어법’의 ‘어(語)’가 ‘말’이라는 뜻이므로 ‘어법’은 말(음성 언어)에 적용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오해이다. 엄밀한 개념으로 ‘문법’과 ‘어법’은 구별되지 않는 말이다. 다만 둘 중에서 ‘문법’이 더 공식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쓰인다.
(1)은 구개음화 규칙을 언급한 것이고, (3)은 조사 사용의 원칙을 예시한 것이다. 이것들은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이라면 의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이고 평소의 언어생활에서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자연스럽게 쓰는 말이나 글이 ‘틀린’ 것이므로, 어떤 논리적 일관성에 따라 ‘옳은’ 말을 써야 한다고 지시받을 때가 있다. (2)와 (4)가 그 예이다. 한국어 모어 화자는 주로 ‘그분께 걸맞는 대우’라고 하지 ‘그분께 걸맞은 대우’라고 하는 일은 드물다. 형용사 ‘작다’를 ‘작은’으로 활용하듯이 형용사 ‘걸맞다’ 역시 ‘걸맞은’으로 활용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되므로, ‘걸맞는’은 틀린 것이라는 교육을 받은 후에야 의식적으로 ‘걸맞은’이라고 한다. 한글 맞춤법인 (4) 역시 교육을 받아야 알게 되고 지키는 성격의 문법이다.
즉 (1), (3)의 성격과 (2), (4)의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1), (3)은 토박이 화자가 자연스럽게 쓰는 말과 글의 원리를 기술해 주는 문법이라고 하여 ‘기술 문법’이라 하고, (2), (4)는 어떤 올바른 논리적 규범을 정해 놓고 그에 맞도록 지시하는 문법이라고 하여 ‘규범 문법’이라 한다. 앞서 언급한 ‘어법’은 때때로 규범 문법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쓰이는 관습이 있으나 이는 그야말로 관습일 뿐 엄밀하게 정의된 용법은 아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어휘를 그 의미에 따라 정확하게 사용하였는지 혹은 특정 상황에서 어떤 말과 글이 적절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문법’과 관련되지 않는다. (5)는 어휘의 의미에 따라 ‘결제’와 ‘결재’를 구별해야 함을 언급한 것이다. (6)은 ‘호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말하면 예의에 어긋남을 언급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서 말의 의미나 상황적 적절성까지 언급한 (5), (6)과 같은 예를 문법에 포괄하여 다루기는 하지만, 그것은 교육의 편의에 의한 것일 뿐 일반적으로 (5), (6)과 같은 기술은 ‘문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법’이라는 말은 그 개념의 포괄 범위가 넓은 경우도 있고 좁은 경우도 있다. (1)~(4)를 보면 발음, 단어의 형태, 표기 방식, 문장의 구성 등 말과 글의 거의 전 범위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문법의 개념을 넓게 설정하였을 때에는 (1)~(4)를 모두 문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법을 좁은 의미로 사용할 때에는 (3)과 같이 화자들이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문장 구성의 원리만을 가리킨다. (2), (4)와 같이 교육받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규범 문법이나, (1)과 같은 발음 규칙은 문법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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