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용언의 어간에 어미가 붙어서 어떤 어형을 만드는 것, 곧 어미 활용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와 관련한 문법 용어를 설명하고자 한다. 학교 문법적으로 말하면 서술격 조사 ‘이다’ 역시 활용을 하므로 용언만이 활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이다’도 대개 형용사의 일종으로 다루어지므로, 활용은 용언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1)에서는 ‘먹-’에 어미 ‘-고, -지, -어서, -으면’이 붙어서 단어의 형태가 완성됨을 확인할 수 있다. 단어의 형태를 가리켜 ‘어형’이라고 하는데, 특히 이처럼 어간에 어미가 붙어 이루어진 어형을 활용형이라고 한다. 용언은 활용형이 되지 않고서는 사용할 수 없으므로, 살려 쓴다는 뜻의 활용이라는 말을 쓴다.
활용은 크게 규칙 활용과 불규칙 활용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규칙 활용은 어간이나 어미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거나 달라지더라도 일반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활용을 가리키는 것이고, 불규칙 활용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국어에는 형태소와 형태소가 만나는 지점에서 모음이 연속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기피 방법 중 하나는 두 모음 중 하나를 탈락시키는 것이다. (2)와 (3)에서 어간의 끝 모음에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고’가 붙으면 어간과 어미가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며 결합하는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아서/-어서’가 붙을 때에는 형태소와 형태소가 만나는 지점의 두 모음 중 하나가 탈락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탈락은 국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규칙 활용으로 본다. (4)에서는 ‘ㄴ’으로 시작하는 어미 ‘-는’ 앞에서 ‘ㄹ’이 탈락했는데, 어간의 종성 ‘ㄹ’이 어미의 초성인 ‘ㄴ, ㅂ, ㅅ, 오’를 만날 때 탈락하는 것은 국어의 일반적 현상이므로 이 역시 규칙 활용이다.
(2)에서 동일 모음이 연속되어 하나를 탈락시킨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쉬워 불규칙 활용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3)에서의 ‘으’ 탈락, (4)에서의 ‘ㄹ’ 탈락은 직관적으로 불규칙 활용과 유사하게 보여 불규칙 활용으로 다루어 온 전통이 있고, 그러한 전통을 존중하여 현행 한글 맞춤법 제18항에서도 불규칙 활용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3), (4) 역시 규칙 활용이다.
(5)의 ‘(돈을) 걷다’는 어간과 어미의 결합에서 발음의 변화가 없으므로 규칙 동사이다. 그러나 (6)에서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어, -으면’ 앞에서 ‘걷-’의 ‘ㄷ’이 ‘ㄹ’로 바뀐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경우에 이렇게 변동하는지를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6)의 ‘(길을) 걷다’를 불규칙 동사로 다룬다. 이처럼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어간의 ‘ㄷ’이 ‘ㄹ’로 변하는 불규칙을 ‘ㄷ 불규칙’이라고 한다. ‘ㄷ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의 예로 ‘묻다[問], 듣다[聞], 싣다[載], 깨닫다[覺]’ 등을 더 들 수 있다. ‘ㄷ 불규칙’ 활용은 동사에서만 발견되고, 형용사에서는 발견된 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6)에서 이형태 ‘걷-’과 ‘걸-’ 중 ‘걷-’을 대표형으로 본다. 이처럼 하나의 형태소가 둘 이상의 이형태로 나타날 때 그중 대표로 삼은 하나를 기본형이라고 한다. 보통 학문적으로는 ‘걷-’을 기본형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국어에서 어간만으로는 어형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편의상 ‘어간+-다’의 형식을 기본형으로 제시하는 것이 보통이고, 국어사전의 표제어도 이것이 기본형으로 올라 있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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